2024년 10월 17일 목요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그리스도인의 고난

 

성 경: [벧전 4:12-16]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자들아 - 베드로는 본절부터 다시 핍박 받는 자들에 대한 권면을 한다.

본문은 수신자를 향한 베드로의 애정어린 마음을 나타내며,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동시에 새로운 권면의 시작을 알리기도 한다.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 본절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은 '불시험'으로 묘사된다.

 

'시련하려고'는 유혹이 아니라 시험(test)을 의미한다.

'시련'은 본절에서 '불시험'과 동일시되고 있다.

'불시험'은 문자적으로 '너희 중에 타고 있는 불'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고통스럽게 타는 불'로서 소돔성을 파괴시킬 때의 불로 묘사되며(Josephus), 또한 종말에 '바벨론 성'을 멸망시킬 불로 나타나기도 한다.

 

(18:9 그와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이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위하여 울고 가슴을 치며,

18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며).

 

순수한 금속을 얻기 위해 제련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지는 시련이 불같이 뜨거울 것을 상징한다.

 

(66: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27:21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시련하느니라;

 

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이러한 시련을 끝까지 믿음으로써 견디는 자는 저주로부터 구원을 얻을 것이다.

 

한편 '오는'은 베드로나 수신자가 이미 경험했고 또한 현재에도 고난을 당하고 있으며 장차 계속 다가올 시험임을 시사한다.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 '이상히 여기지'는 실제적인 박해에 의해서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을 의미한다. (Beare).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 앞에 다가오는 시련을 엄청난 충격으로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그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으로 그 고난의 동참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쁨과 영광에 참예케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벧전 4:13]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 고난을 당하는 것은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가치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고난''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필연적인 여러 가지 핍박과 치욕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것들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겪을 때와 같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영광의 승리가 기다리고 있으므로 즐거워할 수 있는 이유가 된다.

 

'즐거워하라'는 그 즐거움이 일순간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것임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을 때, 후에 주어질 영광의 승리를 바라보며 항상 어떤 조건하에서도 즐거워해야 한다.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줄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함이라 -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할 때 즐거워하는 목적이며 마지막 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갖게 한다.

 

현재에 당한 고난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견디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것이지만, 그날의 영광을 생각하면 능히 이기고도 남을 만한 것이다.

 

'기뻐하게'는 너무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극도의 기쁨을 나타내는 단어로(Lenski)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극명한 대조를 통해 고난보다 즐거움과 기쁨이 훨씬 큰 것임을 암시한다.

 

 

[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는 문자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라는 의미이다.

 

이러한 표현은 주님이 하셨던 표현이며,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초대 교회 당시에는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박해가 당연한 것이었으므로 거의 전문적인 표현 방식으로 성경의 여러 곳에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다.

 

(10:22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5:21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15:26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1: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2: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3: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한편 '욕을 받으면'은 믿지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방이나 능욕을 받는 것으로 본서에서 여러 번 사용되었다.

 

(4이러므로 너희가 저희와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저희가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2: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15 곧 선행으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이라;

 

3: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70인역에서 악인들이 하나님과 백성들에게 비방했던 것에 대해 많이 사용했으나,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가 받은 모욕을 나타낼 때 많이 사용되었다.

 

(27:40-44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4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42)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13:13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고 욕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에서 당하신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후대 영광에 참여할 복된 것이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 본문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난 당하는 자들이 복 있는 이유이다.

 

본절에서 '영광의 영''하나님의 영'과 동일시되어 '성령'을 나타낸다.

 

'영광의 영'에는 문자적으로 '그 영광의 그'이다.

 

이 표현은 쉐키나(S-hekinah)를 묘사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는 영광을 가리킨다.

 

(16:7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24:16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구름이 육일 동안 산을 가리더니 제칠일에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니라;

 

29:43 내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을 만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

 

40:34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14: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왕상 8:10-11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인하여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6:1 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1: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하나님의 영' '영광의 영'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게 되며 성령의 임재는 하나님의 소유됨을 시사한다.

 

'계심이라''쉬게하다', '자리잡다'라는 의미로 성령의 임재를 시사한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마음속에 임재해 계셨으며 스데반이 순교할 때도 하나님의 영이 임했다.

 

(7:55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의 임재를 통해 하나님의 소유가 되어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한 고난이 동참할 때, 하나님의 두드러진 속성인 영광을 보게 된다.

 

 

[벧전 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적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

 

그리스도인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이어야 하며 세상에서의 잘못 때문에 고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악행으로 받는 고난은 결코 그리스도의 영광이 아니며, 그 악행 자체는 형벌을 받아 마땅한 것이므로 그리스도의 고난과는 별개(別個)의 것이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남의 것을 탐내는 사람'이나, '금지된 일하는 자' 혹은 '밀고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자들이 받는 고난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것도,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받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로 인해 고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벧전 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받은즉 - '그리스도인으로''그리스도의 고난'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받는 고난'이다.

 

(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신약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은 자주 사용되는 표현은 아니지만,

 

(11: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26:28 아그립바가 바울더러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그 말은 예수를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처음에는 '제자','형제', '성도'라는 호칭이 사용되다가 안디옥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당시 신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칭호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아그립바는 그리스도인을 경멸할 때 사용하여(26:28), 초기에는 주로 신자들을 박해할 때 사용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신약성경 기록 당시에는 보편적인 단어가 아니었으나 그 후 A.D. 64 년경까지 로마에서 신자 사이에 이 말의 적합성을 깨닫고 그들 스스로가 보편적으로 사용하였다.

 

(11:19-26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을 인하여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도를 유대인에게만 전하는데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 저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은 마음으로 주께 붙어 있으라 권하니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더라

25)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본절은 베드로 자신의 수치인 그리스도를 부인한 사건을 암시한다.

 

(14:66-72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베드로는 처음에 자신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하였으나,

 

(14: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이제 그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 이름으로' 흑자는 이 구문을 '그리스도인의 자격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라는 의미로서 신분 의식이 강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Selwyn, kelly).

 

그러나 '그 이름으로'는 단순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으로'라는 의미이다. (Blum, Stibbs).

 

왜냐하면 당시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만 붙어도 고난과 핍박을 당하였기 때문이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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