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 화요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문안과 축복

 

성 경: [벧전 5:12-14]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벧전 5:12]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 '실루아노'를 언급한 것으로 보아서 본 12절에서 14절까지는 사도 베드로의 친필인 것을 말해준다.

 

'실루아노로 말미암아'의 표현은 실루아노가 본 서신의 대필자임을 분명히 해준다.

 

그는 '실라'라고도 하며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동행했던 자이다.

 

(15:22-33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

23) 그 편에 편지를 부쳐 이르되 사도와 장로된 형제들은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이방인 형제들에게 문안하노라

24)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시킨 것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혹하게 한다 하기로

25)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의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일치 가결하였노라

26) [25절과 같음]

27)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저희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28)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29)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 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30) 저희가 작별하고 안디옥에 내려가 무리를 모은 후에 편지를 전하니

31)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더라

32) 유다와 실라도 선지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33) 얼마 있다가 평안히 가라는 전송을 형제들에게 받고 자기를 보내던 사람들에게로 돌아가되;

 

15:40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18:5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서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거하니).

 

실루아노가 베드로에게 어떠한 도움을 주었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으나 베드로 전후서를 기록하는데 큰 공헌자였을 것이다.

 

베드로는 '실루아노''신실한 형제'라고 불렀다.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 본서의 주요한 특징은 권면이다.

 

베드로는 지금까지 권면한 모든 것이 '은혜'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베드로가 이제까지 권면한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 속에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며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며, 그리스도인들은 그 은혜 안에서 뿌리를 내려야 흔들림이 없이 굳게 설 수 있는 것이다.

 

 

[벧전 5:13]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의 헬라어는 문자적으로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그 여자'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 여자'란 누구인가? 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 혹자는 베드로의 아내라고 주장한다(Stibbs). 왜냐하면 베드로는 전도여행에 아내를 데리고 다녔었기 때문이다.

 

(고전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2) 혹자는 '바벨론에 있는 교회'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Kelly, Blum).

 

이 두 가지 견해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헬라어로 교회는 여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만약 베드로의 부인이었다면 구체적으로 이름을 열거하였을 것이고 또한 고대의 사본에는 교회라고 직접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한편 '바벨론'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 이다.

 

(1) 혹자는 베드로가 가서 전도한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있는 실제 '바벨론'이라고 주장한다(Calvin). 그러나 베드로가 그곳에서 전도를 했다는 정확한 근거가 없고 초대 교회의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가 로마에 있었음이 확실하기 때문에 타당성이 없다.

 

(2) 혹자는 '애굽의 한 도시'라고 주장한다(Strabo, Josephus). 그러나 베드로가 이곳을 방문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희박하고 기독교가 초기에 이곳에서 발전했다는 자료도 없다.

 

(3) 혹자는 '로마'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enski, Stibbs, Kelly, Blum). 바벨론은 세상을 상징하는 은유적 표현으로서 로마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 베드로는 마가를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초대 전승에 의하면 마가는 바울과 바나바가 떠난 후에 베드로의 동역자가 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베드로가 마가를 내 아들 이라고 한 것은, 바울이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로

 

(딤전 1: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딤후 1: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친아들이 아니라 영적인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의 영적 아들인 마가는 바나바의 조카로서,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본명은 마가 요한이다.

 

(12:12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25 바나바와 사울이 부조의 일을 마치고 마가라 하는 요한을 데리고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니라)

 

그는 바울의 제 1차 전도여행 때 동행했으나 제 2차 전도여행 때는 동행하지 않았다.

 

(13:5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종자로 두었더라;

 

15:37-39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38)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한가지로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39)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그러나 후에 바울이 투옥되자 시중을 들었었다.

 

(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1:24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벧전 5:14]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너희는 사랑의 입맞춤으로 피차 문안하라 - 이러한 표현은 바울 사도가 주로 사용한 표현이다.

 

(16:16 너희가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그리스도의 모든 교회가 다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전 16:20 모든 형제도 너희에게 문안하니 너희는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고후 13:11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 하며 평안할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

 

살전 5:26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모든 형제에게 문안하라).

 

'입맞춤'은 초대 교회에서 사용되었던 인사법으로 2세기 경까지 지속되었다. (Justin, Tertullian, Chrysostom)

 

(7:45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3세기 이후에는 남녀가 구분되어 행해졌으나(TDNT)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되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 모든 이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베드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평강이 있기를 기도함으로 서신을 끝맺는다.

 

'평강'(에이레네)은 히브리인의 인사말로서 '샬롬'과 같은 것으로 본 서신은 '평강'으로 시작해서, '평강'으로 끝을 맺는다.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평강''그리스도 안에 있는'과 관련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 소유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