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특한 사람
잠언 6장 12-19절 불량하고 악한 자는 그 행동에 궤휼한 입을 벌리며
13) 눈짓을 하며 발로 뜻을 보이며 손가락질로 알게 하며
14) 그 마음에 패역을 품으며 항상 악을 꾀하여 다툼을 일으키는 자라
15) 그러므로 그 재앙이 갑자기 임한즉 도움을 얻지 못하고 당장에 패망하리라
16)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 칠 가지니
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18)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19)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한글개역)
'사특한 사람, 악한 사람, 그는 거짓말을 일삼는도다(12).
눈으로 눈짓하고, 발로 알리며, 손가락으로 신호하고(13),
마음에 악을 꾀하고, 항상 분쟁(다툼)의 씨를 뿌린다(14).
이때문에 재앙이 갑자기 임하고, 당장 망하나 도움 없다(15).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여섯 있다.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 일곱 있다(16).
교만한 눈, 거짓을 말하는 혀, 죄 없는 사람의 피를 흘리는 손(17).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18),
거짓을 말하여 증거하는 사람, 형제 가운데 분쟁을 일으키는 자, 이것이다(19 - 일역).
예수는 가르쳐 말씀하셨다.
'선한 사람은 마음 착한 창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창고에서 악한 것을 낸다. 대개 마음에 가득 찬 데서 입은 말하는 것이다(누가복음 6:45-일역)라고.
이것을 잘 가르쳐 주는 것이 잠언의 이 수절이다.
'사특한 사람',
'사념(邪念)의 사람'이라고 읽는 것이 낫다.
원어는 '벨리알의 사람'이라고 되어 있다.
고린도후서 6장 15절에 '그리스도와 벨리알과 어찌 합하는 데가 있으랴'고 있음은,
이를 말함이다.
'벨리알의 사람'이란, 도덕적으로 최하급의 사람이다.
하나님께 저주받은 사람, 구원될 희망이 끊긴 사람이다.
멸망으로 정해진 사람이다.
그를 일명 '악한 사람', 혹은 '악의 사람'이라고 한다.
그 근본에 있어서 악한 사람을 말한다.
'악 그것'이라고 일컬어 말한 것이다.
그런 사람이 있는가, 또는 있을 수 있는 가고 묻는 사람이 있다.
사람의 성은 선하다고 하는 자는, 그런 사람이 있음을 부정한다. (1권 290주 참조).
또 하나님의 사랑을 고조하는 신자는,
'멸망으로 정해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듣고서 세차게 반대를 표시한다.
누가 그런 사람인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있음은 확실하다.
우리들은 자기의 학설 또는 감정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사특한 사람, 악한 사람',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나무는 그 열매로써, 사람은 그 행위로써 알게 된다.
'벨리알의 사람'이 하는 것은 아래와 같다.
'그는 거짓말을 일삼는다' '거짓으로 걷는다'고 의역할 수가 있다.
허위가 그 생명이다.
그의 말뿐 아니라, 전신이 허위이다(1).
그러므로 그는 '눈으로 눈짓하고, 발로 알리며, 손가락으로 신호한다' 고 한다.
눈도 발도 손가락도 모두 허위의 그릇으로 일한다는 것이다.
그의 전신이 허위로 가득한 때문에, 그 손발은, 모두 허위의 기관이 되어 일한다(2).
악은 그의 상성이며, 악을 꾀하는 것이 그의 마음의 상태이다.
그러므로 그는 가는 곳마다 '다툼(분쟁)의 씨를 뿌린다'.
하나님의 자녀가 평화의 자녀인데 대하여, 벨리알의 자녀는 분쟁의 자녀이다.
그가 있는 곳에 다툼은 반드시 조성된다(3).
사특한 사람은, 공공연하게 노골적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
마음에 악을 꾀하고, 눈과 발과 손가락으로써,
자기를 숨기면서 사람의 평화를 어지럽힌다.
하지만 은닉되어 있는 죄가, 숨김없이 (백일하에) 처벌되는 때가 온다.
재앙은 갑자기 뜻하지 않은 때에 온다.
그리고 순식간에 멸망하고, 그를 도와 일으키는 자 없다.
그의 멸망은 완전이다. 그는 넘어졌다가 다시 서지 못한다.
흰개미에게 기둥의 중심을 먹힌 집처럼,
마음은 썩어서 형해만 남은 그는 재난의 일격에 직면하면,
다시 설 수 없는 정도로 붕궤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과연 없는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나의 생애에 있어서 나는 그런 사람을 보았다.
실로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의 사람을 보았다.
나는 그에게 어떤 좋은 데가 없는가 생각하고,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 선한 것도 발견할 수 없어 실망했다.
그는 자기의 자태를 감추고 죄를 행한다.
그가 평화의 교란자임을 발견하기까지에는,
오랜 시일과 많은 쓰라린 실험(경험)을 필요로 한다.
나는 종종 그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몇 번이나 그를 신뢰하여 그의 성실에 접해 보려 했다.
하지만, 전연 성실 결핍한 그의 마음의 문은, 신뢰로써 열 수가 없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분쟁의 씨를 뿌렸다.
그리고 그와 절연한 후에, 평화는 내 몸에 임했다.
실로 기이하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는 벨리알의 사람이다. 사단의 점령한 바로 된 사람이다.
어찌하여 그가 그런 사람이 되었는가, 나는 알기에 고심한다.
그러나 사실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벨리알의 사람은 벨리알의 사람이다.
만약 불행하게도 벨리알의 사람에 조우할 것인가?
이에 이기는 길은 다만 하나 있다.
즉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는 악을 행하는데 능숙하여,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써 그를 제거할 수는 없다.
'이런 유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나가는 일 없다'(마태복음 7:21 일역)고 예수는 말씀하셨다.
기도는 신자가 악인과 싸우는 때의 유일한 무기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 주시는 때의 승리는 완전이다.
'재앙이 갑자기 임하고, 당장 망하나 도움 없다'이다.
굳이 우리 적이 망하기를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입장(경우)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다.
제 16절 이하 19절까지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열거되어 있다.
'여섯 있고, 일곱 있다'고 한다. 무수히 있다.
그 중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최후의 것이라는 뜻이다.
교만한 눈, 거짓을 말하는 혀 등, 모두 싫어하신다고 하지만도,
여호와께서 특히 싫어하시는 것은,
'형제 중에 분쟁을 일으키는 자'이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치고, 이것보다 더한 것은 없다.
산상수순(마태복음 5-7장)에 말씀하신다.
'화평을 구하는 자는 복 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을 것임으로이다'(마태복음 5:9)고.
벨리알의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와 정반대이다.
그는 화평을 미워하고, 분쟁을 사랑(좋아)한다.
그가 있는 곳에, 친구는 이반하고, 형제는 흩어져 버린다.
그가 기뻐하는 일치고, 사람의 평화가 깨어지는 것 이상 없다.
친밀한 부부사이를 끊게(벌어지게)함을
최상의 즐거움으로 하는 근대 부인이 있다고 들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벨리알의 남녀 있는 이유는,
확실히 우리들에게 기도를 가르치기 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겁낼 것 없다.
'우리의 싸움의 병기는 육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새를 깨칠 만큼 하나님께 의뢰하여 능력 있다'(고린도후서 10:4 일역)고 있는 대로이다.
벨리알의 사람이라 해도,
크리스천의 기도에는 대적할 수 없는 것이다.
벨리알의 사람, 근본적 악인, 생래의 악인이라고 해야 할 사람,
만약 그런 사람이 있어서 우리를 괴롭힐 것인가?
우리는 악으로써 악에 항거치 말고, 선으로써 악에 이기려고 한다.
즉 기도로써 이에 응전한다.
그리고 그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 우리와 화하는 경우가 있다.
그 때 우리의 기쁨은, 비할 데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그가 회개하지 않고서 반항을 계속할 것인가?
그는 '재앙이 갑자기 임하고, 당장 망하나 도움 없도다'이다.
'갑자기'란 뜻밖에' (생각 못한 때)라는 뜻이다.
그가 생각하지 못한 때에, 그가 승리를 자랑하고 있는 때에
그가 나를 없는 자나 마찬가지로 여기고,
그 경모, 능욕을 계속하는 때에, 멸망이 그에게 이르고,
그는 쓰러져, 우리는 구조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무저항주의라고 해서 아주 무기력한 것같이 보이지만도,
실은 이보다 더 나은 완전한 승리의 길은 없는 것이다.
사람에게 이 인내와 싸움의 무기 없을 때, 그는 크리스천이 아니다.
기도, 기도,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를 괴롭히는 자를 심판하시기를 기다린다.
'하나님은 밤낮 기도하는 바의 택하신 자를,
오래 참으신대도 마침내 구원하시지 않으랴. 내가 너희에게 이른다.
하나님은 속히(갑자기, 뜻밖에) 그들을 구원하시리라'(누가복음 18:7-8 일역)고.
예수는 이러한 경우에 있는 신자를 위로하여 말씀하셨다.
실로 고마우신 일이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그 심판을 행하신다.
이 세상에 있어서도 권선징악은 확실히 행해진다.
의인은 조금도 실망할 것 없다.
* (내촌감삼의 1925년 3월 '성서지연구'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