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6일 화요일

대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미끄러우나

  

몸의 청결

 

잠언 51~23

 

'창기, 유녀, 음녀의 입술은 꿀을 떨어뜨리며, 그 입은 기름보다 매끄럽도다.

하지만 그 나중은 쑥(인진)처럼 쓰고, 양쪽에 날이 있는 칼같이 날카롭도다'.(5:3-4 일역)

 

인류 있는 이래,

창기가 없었던 때는 없고, 없었던 곳은 없다.

 

서양에 있다. 동양에 있다. 미국에 있다. 일본에 있다.

창기로 더럽혀지지 않은 나라란 하늘 아래 한 나라도 없다.

 

특히 이세의 야마다, 또는 교또의 시마하라(히가시흥간지 동본두절 근접지),

신성해야할 땅에 이것 있음을 볼 때,

사회는 그 근저까지 이것으로 해독(害毒)되어 있음을 안다.

 

말하고들 있다.

 

'이브가 아담과 함께 죄를 범하고, 에덴동산을 쫓겨난 때,

창기는 시작된 것'이라고.

 

어쩌면 그러리라.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때에,

그 정성이 더럽혀져, 타락남녀로 되는 것이다.

 

아마도 그리스도의 재림에 의해,

이 세상이 화하여 그리스도의 나라로 되기까지,

창기는 이 세상에서 근절되지 않으리라.

 

그리고 남자가 창기에게 그 몸을 더럽히는 때에,

그는 몸과 함께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다.

 

바울은 말했다.

 

'사람의 모든 행하는 죄는 몸 밖에 있다.

하지만 음행하는 것은 자기 몸을 범함이라'. (고린도전서 6:18-일역)

 

즉 몸을 그 중심 즉 영혼에 있어서 범하는 것이다.

죄는 어느 것이건 두려워할 것이라 해도,

창기에 의해 범하는 죄,

즉 간음만큼 두려워해야 할 죄는 없다.

 

이것은 단순히 방탕, 또는 도락으로서 간과해야 할 것은 아니다.

중대한 죄이다.

이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본이 해독(害毒)되는 것이다.

 

단순히 인류의 건강상태에서 생각한대도, 음행은 질병의 10분의 9의 원인이다.

 

직접으로 화류병으로서 나타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여러 가지 잡다한 질병으로 나타나는 것은,

사람이 잘 아는 바이다.

 

세상에 창기가 근절되는 때에 병의 10분의 9는 근절되는 것이다.

 

실로 매독에 의해 멸망한 나라는 허다히 있다.

 

하와이 같은 것은, 그 가장 슬퍼해야 할 실례이다.

 

지금부터 150년 전에, 캡틴 쿠크가 처음으로 이것을 발견한 때에는,

하와이 군도는, 강건한 토인 40만을 가지는 행복한 나라였다.

그런데 그의 탐험대가 남긴 병독이 원인이 되어,

100년을 경과하지 못했는데, 도민의 건강상태는 현저히 악화하여,

사망률은 격증하고, 마침내 나라로서 독립을 유지할 수 없어,

오늘 보는 대로 미국의 영토로 된 것이다.

하와이국에 선교사를 보내어 그 교화를 꾀하기 전에,

그리스도교국은 술과 매독을 보내어,

이 태평양의 낙원을 창기, 악도(惡島)의 나라로 만든 것이다.

 

같은 일이 시베리아(정복자 에르마크)에 있어서의

러시아인(소련의 전신)에 의해 행해졌던 것이다.

러시아인의 감화로 말미암아,

강건한 시베리아 민족으로서, 절멸된 자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시베리아 토인은,

그리스도교를 일컬어 러시아인의 종교라 하고,

보드카를 일컬어 러시아인의 술이라 하며,

매독을 일컬어 러시아인의 병이라고 하는 것이다.

러시아인의 종교와 러시아인의 병,

모순일지, 농담일지,

실로 전율해야 할 것은, 음행의 해독이다.

 

사실이 이렇다고 하면,

사람은 누구나가 음행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자는 창기를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

 

네 길을 그녀에게서 멀리 떠나게 하라.

그 집 문 가까이 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두렵건대..’ 라고 있음은,

적당한 훈계이다.

 

바울은 이것을 되풀이하여 말했다.

 

'너희는 음행을 피하라'.

 

즉 음행은 이것을 피하라. 이에 가까이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창기는 위험물이다.

이에 가까이 하여, 위험을 범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에 가까이해도 가하다. 접하지 말라든가,

혹은 이에 접촉해도 가하다. 이에 빠지지 말라고 하는 것 등은,

인생의 위험에 빠지지 않는 길은 아니다.

 

사회연구라고 하면서, 유리로 들어가는 것은, 죽음에 가까이 하는 것이다.

그리고 들어가, 몸과 영혼을 망친 사람은 무수하다.

또 사회의 암흑면을 앎의 필요는 조금도 없다.

 

세상에 요시와라쯔라는 자가 있다지만,

그 사람은 결코 인생을 아는 자는 아니다.

 

인생은 하나님의 광명에 접할 때 안다.

세상의 죄악에 접해서는 조금도 알지 못한다.

자신이 죄악의 가로에 들어가 죄악학자로 될 필요는 조금도 없다.

그러한 자는 대개는 죄악의 포로로 되어, 그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

색정(lewdness)에 빠지지 않는 길은,

음을 피하는데 있다.

즉 음에 가까이 하지 않음에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족하지 못하다.

몸을 삼가는 것만으로는 몸은 깨끗해지지 않는다.

 

몸을 깨끗이 하고자 하면,

하나님께 몸을 깨끗이 하여 주심을 입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성령께서 거하여 주시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음행은 중한 죄인 만큼 또 강한 죄이다.

이것을 사람의 노력만으로 저항하는 것은, 아주 곤란하다.

하나님께 도와주심을 입어, 완전하게 이에 이길 수가 있다.

이에 있어서 고린도전서 619절의 의미를 알 수 있는 것이다.

 

'너희의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으로서,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 줄을 알지 못 하는가'.

 

내 몸을 성령의 전으로서 받들 때,

나는 완전하게 음행을 피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작은 일에 하나님의 능력을 배차하는 듯이 보여,

아주 황송한 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나.

일은 하찮은 것이 아니라, 대사이다.

 

창기(창녀)의 배후에 사단 그 자신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 때,

이것과 싸움에 있어서,

크신 능력에 의뢰함은 결코 부당하지 않은 것이다.

 

색정을 피함은, 생을 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 몸을 깨끗이 함을 입는 때,

비로소 가정의 행복과 자손의 번영을 꾀할 수가 있다.

 

사음 유행의 나라에 인구는 감소하고,

남녀관계 청결한 나라에 백성은 증가한다.

 

몸의 청결은,

인생의 행복을 그 모든 방면에 있어서 즐기기 위해 필요하다.

삼가야(조심해야) 할 것은 사랑의 낭비이다.

 

* (내촌감삼의 192412'성서지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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