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총명과 지혜
잠언 3장 13-20절 :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14)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15)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너의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16) 그 우편 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 좌편 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17)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 첩경은 다 평강이니라
18)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19)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을 세우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굳게 펴셨고
20) 그 지식으로 해양이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이 내리게 하셨느니라.(한글개역)
지식에 3계단이 있다.
그 첫째가 지식,
둘째가 총명(명철),
셋째가 지혜이다.
문자를 늘어놓은 것만으로는, 그 의미는 모른다.
특히 역자(譯者)에 있어서는 그런 것이다.
우리들이 사실(내용)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런 후에 그 의미를 문자 속에서 해독해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문자는 요컨대 표호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 지식이라고 함은,
관찰적 지식이다.
사물을 보고,
그 실상을 앎의 지식이다.
시험 삼아 참새를 볼 것인가?
그것이 어떤 새인가?
그 크기, 빛깔, 습관 등,
단순히 새의 일종으로서 살펴 얻은 지식이다.
사람으로서 본 사람에 관한 지식,
천연으로서 본 천연에 관한 지식,
사물의 대소에 상관없이,
다른 것과 분리시켜 한 가지 사물을 보고 얻은 지식,
그것이 단순한 지식인 것으로서, 기초적 지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지식이 확실하면 하느니만큼,
다른 지식이 확실한 것이다.
천연학자는 이런 종류의 학자이다.
다윈(1권 24p 주)은,
그 가장 우수한 자였다.
또 개인을 아는 것은,
사회와 인류를 앎의 전제이다.
전기(傳記)에 정통치 못하고서,
역사를 알 수는 없다.
지식 후에 총명이 온다.
총명은 관계적 지식이다.
한 가지 사물의 다른 사물에 대한 관계를 아는 지식이다.
참새는 새이다.
이것과 비슷한 새가 있다. 이것과 다른 새가 있다.
또 새로서 다른 동물에 대한 관계가 있다.
새를 안 것만으로는, 새는 알지 못한다.
우주만물과의 관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참새의 의미가 해득되는 것이다.
참새 그러하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자기를 안 것만으로, 자기는 알지 못한다.
일본인으로서, 아시아인으로서,
아담의 후손으로서 자기를 볼 때,
자기의 존재 의의가 해득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에 관한 이런 종류의 지식이 총명이다.
자기의 대도 소도, 의무도 책임도, 권리도 운명도,
자기에게 관계되는 관계적 지식 즉 총명을 얻음으로써,
자기 자신에 비로소 자각하는 것이다.
지식 있고,
총명 있고서,
그런 후에 지혜가 있는 것이다.
지혜는 실제적 지식이다.
지식의 응용 이것을 지혜라고 한다.
먼저 사물을 알고, 사물과 사물과의 관계를 알고,
그런 후에 그 지식에 따라 행하여,
우리들은 잘못됨이 없음을 얻는 젓이다.
모든 지식의 목적은,
바로 행하는데 있다.
우리가 배우려고 하는 모든 학문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옳은 사람다운 생애를 보내기 위해서이다.
지식의 3계단을 현대어로 역하여 말한다면,
첫째가 과학이고,
둘째가 철학,
셋째가 도덕이다.
과학을 위한 과학이 아니다.
철학을 통하여, 도덕에 달하기 위함의 과학이다.
그리고 지혜의 책인 잠언은,
당시의 과학과 철학 위에 구축된 도덕을 가르치는 글이다.
저자 솔로몬이 얼마나 박학한 사람이었었는지는,
열왕기상 4장 30절 이하의 말에 의해 분명하다.
(열왕기상 4장 30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솔로몬의 지혜는 동방 사람들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도 컸다.
그는, 잠언 삼천을 말했다.
또 그 시가는 일천백 편(일천다섯 편으로 된 사본과 번역된 것도 다수 있음)이었다.
그는 또 초목에 대해 논하여,
레바논의 향백에서 담(울타리)에 나는 이끼(한글역은 우슬초)에 까지 언급했다.
그는 또 짐승과 새와 포행동물과 물고기의 일을 논 했다'
오늘로 말하면, 솔로몬은 박물학자요, 철학자요,
동시에 또 윤리학자였던 것이다.
가장 건전한 학자였던 것으로, 우리 누구나가 배워야 할 것이다.
이상의 설명을 마음에 두고, 제 3장 13절 이하 20절까지를 읽으면,
그 의미는 잘 해득되는 것이다.
복 있도다, 지혜를 구하여, 이것을 얻은 자는,
지혜를 자기 소유로 한 자는 복 있도다.
대저 지혜를 얻음은 은을 얻음보다 낫도다.
그 이익은 금보다도 나음으로이다.
지혜는 산호(한글역:진주)보다 귀하고, 이에 비교할 보배 없도다.
장수는 그 오른 손에 있고, 그 왼손에 부와 귀함이 있도다.
그 길은 즐거움의 길이요, 그 지름길(샛길)은 모두 다 평탄이다.
이것은 이것을 얻은 자(잡은 자)에게는 생명나무라,
이것을 품고 떠나지 않는 자는 복 있도다.
여호와는 지혜로써 땅을 고정시키셨도다.
명철로써 하늘을 펴셨도다(떠받치셨도다).
그 지식으로 말미암아 물은 솟아나고, 구름은 이슬을 내리게 하는도다(13-20)
지혜는 최선의 소유,
지혜는 최대의 보배,
지혜는 최상의 즐거움, 그것은 그럴만하다.
천지만물은 여호와의 지혜로 말미암아, 이룩된 것이므로 이다.
샘이 솟아나옴도, 이슬과 비가 내리는 것도,
여호와의 지혜로 말미암는다.
사람의 지혜로써,
하나님의 지혜에 응하는 것(적응시키는 것),
그것이 도덕이다.
천연의 법칙이라고 해서 도덕과 따로 상관없이 떠나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지식은 그 궁극에 있어서, 지혜 즉 도덕이다.
이것이 성서의 견해(성서관)이다.
과연 그런지? 그것을 연구하는 것이 학문의 목적이다.
(그런데) 학문을 비도덕으로 보는 것이 근대 지식의 경향이다.
이에 반하여, 그리스도교는 처음부터, 유신적이며, 도덕적이다.
* 참조 : (내촌감삼의 1924년 12월 '성서지연구'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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