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1일 일요일

너희는 바리새인의 누룩에 주의하라. 이는 위선이다.

 바리새인의 위선

 

누가복음 121-3

 

'그 때 허다한 군중이 서로 밟힐 만큼 모여드니, 예수께서 먼저 그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바리새인의 누룩에 주의하라. 이는 위선이다.

2) 하지만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 없고, 숨겨져 알려지지 않을 것 없다. 이것과 상대하여 너희가 어두운데서 말한 것은 빛(밝은 데)에서 듣게 되리라.

3) 밀실(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선포되리라'(누가복음 12:1-3, 내촌번역)

 

 

누룩이란 주의(注意)이다.

바리새인의 누룩이란 그의 주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것이 위선이라고 한다.

 

오늘은 위선이라고 하면,

(내부)의 악()을 가리는 데 밖의 선으로서 하고,

(내부)의 추()를 가리는 데 밖의 미로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바리새인에게도 이 의미의 위선이 있었음은 의심할 것도 없다.

 

예수께서 그들을 책망하신 말 중에,

 

'아아, 화 있을진저! 너희 위선인 신학자와 바리새인아,

너희는 회칠(힌칠)한 무덤 같도다. ()은 아름답게 보이지만도,

안은 해골과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밖()은 의롭게 사람에게 보이지 만도,

안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28일역)라고 있다.

 

예수의 이 말씀을 통하여 볼 때,

 

당시의 바리새인,

오늘 우리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위선자였음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위선이란 단지 겉()의 선으로서 안의 악을 꾸미는 것만이 아니다.

지금의 소위 위선자만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위선자는 아니다.

 

바리새인(8369)은 전체로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인 것은, 나는 이것을 증언한다'(로마서 10:2일역)

바울은 말했다.

 

하지만 그들은 위선의 사람이었다.

그리스어의 히포크리테스 (위선자로 역된 원어)'배우'의 뜻이다.

그리고 배우는 무대 위에서 행위를 연출하는 자이다.

즉 사람에게 보이려고 일을 행하는 자이다.

외형을 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사업이라 칭하고, 공적이라 칭하며,

공중(군중)의 이목을 끄는 것으로서 행동의 제1의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또 바리새인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마태복음 23:5일역)라고.

 

즉 바리새인은 배우의 일종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위는 모두 연극적이었던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사람에게 좋은 평 받기 위해,

오늘의 말로서 한다면,

사회의 호평을 받기 위해, 그들은 만사를 행했던 것이다.

 

전도에 종사할 것인가?

그들은 많은 신자를 구하고, 교세의 융성을 바랐던 것이다.

 

천국의 건설을 부르짖을 것인가?

그들은 지상에 있어서의 정권의 실시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들은 즉 종교가이기보다는 오히려 정치가였던 것이다.

신앙가이기 보다는 오히려 운동가였던 것이다.

 

오늘의 말로서 한다면, 그들은 수완가였던 것이다.

사회에 종교의 세력을 펴는 그 기술에 능한 자였던 것이다.

종교적 배우였던 것이다.

사회의 무대 위에 서서 능히 신앙을 연출함의 기술을 가지고서,

이로서 세상을 자기에 화(문일화)함의 재능을 자랑한 자이다.

그리고 예수가 특히 바리새인을 싫어하셨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그는 그들을 히포크리테스,

즉 배우 즉 위선자라고 부르셨던 것이다.

 

종교는 원래 심령적인 것이다.

이는 영과 영과의 관계이다.

쉽게 겉()으로 나타낼 것은 아니다.

마치 부처 사이에 있는 사랑 같은 것으로

이것을 사람에게 보이면 손해를 입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있는 이 신성해야 할 사랑을

세상의 노출물로 만들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으로써 자기의 세력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종교를 정치화하려 했던 것이다.

신앙을 무대(무대교단) 위에서 연출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에게 있어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예수에게 있어서는 신앙은 안(내부)의 일이었다. ()의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정치문제 또는 사회문제로 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이것은 신성의 비밀을 지켜야할 일이다.

 

결코 무대 위에서 연출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당시의 신학자와 바리새인은 다투어

예수의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행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견딜 수 없어 몇 번이고 노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다.

 

'아아, 화 있을진저, 학자와 바리새인아!'(마태복음 23:13일역)라고.

 

또 제자들에게 말하여,

 

어떤 때는 '삼가 바리새와 사두개인의 누룩에 주의하라'(16:6)고 하시고,

 

또 어떤 때는 '삼가 바리새인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에 주의하라'(마가복음 8:15)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두개인은 종교를 문명의 용구로서 이용하려 하고,

헤롯은 이것을 정치의 기관으로서 사용하려 했다.

그리고 바리새인도 또한 이들 양당의 사람 따라,

(내적)이어야 할 신앙을

()인 세력이 되게 하려고 했다.

 

그들 삼자는 정략을 달리하지만도 목적을 같이 했다.

신앙을 현세의 것이 되도록 하려는데 있어서는,

바리새도 사두개도 헤롯도, 삼자(三者) 한가지로

그 길 궤도를 하나로 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그의 앞에 모여온 군중을 가르치시기에 앞서

먼저 그 제자들에게 가르쳐 말씀하셨던 것이다.

 

'너희들, 바리새인의 누룩에 주의하라. 이는 위선(히포크리시스)이다'라고.

 

즉 예수의 제자는,

바리새주의 따라 신앙을 외형적으로 유지할 것 아니다.

 

이것을 공중 앞에 연출할 것 아니다.

수와 양과 권(권력)에 의지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예수는 그의 제자에게 신앙의 비밀을 요구하셨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즉 바리새인)처럼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 회당이나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이미 그 보수를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데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데서 보시는

네 아버지는 숨김없이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5-6일역)

 

공개연설이라든가, 노방설교라든가,

이는 위선의 바리새인이 행한 것으로서,

예수의 명하신 것은 아니다.

 

예수는 모든 연극에 유사한 것은 이것을 마음으로 싫어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계속 하여 말씀하신다.

 

'바리새인은 위선을 주로 한다.

하지만 감추인 것으로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또 숨긴 것으로 알려지지 않을 것 없다.

또 이에 반하여, 너희가 어두운 곳에 있어서 은밀히 말한 것은

공공연하게 밝은데서 듣게 되리라.

또 밀실에서 속삭인 것은 지붕 위에서 전파되기에 이를 것이다'(누가복음 12:2-3일역).

 

예수는 여기서 특히 바리새인의 전도 법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아울러 그의 제자 된 자의 취해야 할 전도 법에 대하여 말씀하셨던 것이다.

 

바리새인은,

회당이나 시장 한쪽에 서서 소리를 높여 기도하고,

또 설교하며, 혹은 헤롯당과 결탁하고,

혹은 사두개인와 화동하여,

할 수 있는 대로 나타나게,

할 수 있는 대로 널리 그 주장을 펴서,

한 사람이라도 많은 동신의 사람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고 해서,

그들은 그들의 진가보다 자기를 귀하게 할 수 없다.

 

연극은 위선이다. 배우는 위선자이다.

(내부)의 진가는 밖(외부)의 도금(plating)으로서 장식할 수 없다.

 

진리는 특히 이것을 광고할 필요가 없다.

바리새인는 사람의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진리를 펼치려 하여,

스스로 속아 모르는 사이에 위선자로 되었다.

 

이에 반하여 너희들 내 제자 된 자는 그들에게 배우지 말라.

너희는 겉으로 뻗으려 말고 안으로 결실 하도록 하라.

고단에 서서 말씀()을 설하려 말고 밀실에서 사람과 대좌하여 말하도록 하라.

진리는 자기의 광고 자이다.

 

너희가 진리를 말할 것인가?

진리는 너희의 수단을 기다림 없이,

혼자 유암에서 나와 광명으로 빛나고,

밀실에서 나와 지붕에서 울려 퍼질 것이다.

 

진리는 이것을 무대 위에 연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을 유암에서 말하고 밀실에서 귓속말하면 족하다고.

예수는 여기서 이같이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이다.

 

귀하다, 이 교훈,

이는 실로 예수의 교훈다운 교훈이다.

예수는 실로 이같이 교훈 하셨을 것이 틀림없다.

 

모든 위인은 진리의 확신자이다.

하물며 예수께 있어 서랴!

 

예수는 진리의 진가를 믿는 일 너무나도 강하기 까닭에,

바리새인이 정치를 이용하고 문명과 결합하여,

모든 속수 단을 농하여 교세확장에 종사함을 볼 때,

이것을 견딜 수 없이 느끼셨던 것이다.

 

예수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의 소위 교세확장운동은 모두 바리새인의 누룩 같은 것으로서, 위선이다.

이에 종사하는 자는 모두 위선자이다.

뭐 반드시 악의에서 이것을 행했기 때문에 위선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의 그릇된 평가에서 이것을 했기 때문에 위선자라 하는 것이다.

 

즉 바울이 그들에게 대하여 말한 대로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인 것은, 나 이것을 증언한다 하지만

그 열심은(바른) 지식에 의한 것이 아니라'(로마서 10:2일역).

 

여기 말하는 '지식'이란,

이것을 상식이라고 해도 가하리라 생각한다.

바리새인들은 열심히 아닌 것 아니지만도 상식을 결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천국의 일을 이 세상의 것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그들은 종교를 정치와 혼동했던 것이다.

그들은 신앙의 일을 사회문제로 오상(misconception)하여

그 전파의 방법을 전연 그르쳤던 것이다.

 

그리고 옛날의 바리새인에 한하지 않는다.

지금의 종교가도 거의 이 상식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자기에게 상식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 세상의 수단으로써 종교의 전파를 꾀(도모)하는 그것이,

그들이 영과 천국의 일에 대하여 전혀 상식을 결여하고 있는 증거이다.

 

'어두운 데서 말한 것은 빛()-밝은 데)에 있어서 듣게 될 것이다.

밀실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은 지붕 위에서 전파될 것이다'(3)라고.

 

그렇다면, 복 될진저, 개인전도

복 될진저, 선교사가 조소하는 '화로(火爐)가 전도'.

두 사람이 상대하여 하나님의 도를 말하는 것,

이는 결코 작은 사업은 아니다.

이것은 드디어 광명에서 듣게 되고,

지붕 위에서 선전되기에 이르는 대 진리의 전달이다.

 

사부 스타우피츠가 에르푸르트의 수도원 밀실에서 루터와 상대하여 말한 때에,

그 때에, 실은 16세기의 종교 대 개혁은 시작되었던 것이다.

 

윔즈회의(보름즈회의),

제와, 후백, 고승, 귀현, 구주의 화를 불러 모은 5천의 청중이 모인

그 석상에서 루터가 주창한 대 진리는,

당초 이는, 스타우파츠가 밀실에서 가는 음성으로,

저 루터에게 전한 것이었다.

 

스타우피츠일까, 루터일까?

세계역사는 전하여 말한다.

종교개혁은 루터의 사업이라고,

 

하지만 누가 알랴?

하늘의 장부에는 스타우피츠야 말로,

그 주창자였다고 기록되어 있을 지를.

오인은 예수님 자신이 밀실전도의 주창자였음을 알고,

크게 마음을 안위 받는 자이다.

 

오인도 역시, 성서에 명백히 기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도라면 회당이나 거의 한편에 서서 기도하고 또 외치는 일로 생각했었다.

그렇게 하는 일은,

위선자의 행위라는 것을 예수님 자신의 말씀을 기다려 비로소 알 수가 있었다.

 

바리새인의 누룩,

연극주의, 공개연설, 귀현신사 초대회,

제왕의 축전, 귀족을 종교운동의 회두(고문)로서 추대하는 일,

이는 모두 히포크리시스이다. 위선이다.

그 허한 짓, 그 불실 한 것은, 머지않아 폭로될 것이 정해져 있다.

'사람의 원조(구원)는 헛됨이니이다'(60:11; 108:12참조)고 시인은 되풀이하여 말했다.

사회의 찬성을 구한다는 것은,

'사람의 원조'를 빈다 '는 말이다.

 

우리들 예수의 제자인 자는,

사회도 교회도 이를 안중에 둘 것 아니라,

다만 하나님과 함께 곧 사람의 영혼에 접해야 할 것이다. (910, 금정관에서 진술)

 

*내촌감삼의 (191110'성서지연구')를 참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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