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8일 일요일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복음으로 인한 분열

 

성 경: [12:49-53]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50)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본문에서 해석상의 쟁점이 되는 것은 ''의 의미에 관한 것으로

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1) 성령, 또는 성령의 능력(Grundmann, Ellis).

(2) 영적 활동(Bengel,Vincent).

(3) 심판 (Schlatter,Grasser).

(4) 로마의 침략(Clark).

 

이 가운데 어떤 견해가 정확한 것인지를 판별하기란 어렵지만

앞의 비유와의 연관성을 고려하건대 (3)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 이 문구에 대한 해석 역시 다양하다.

 

(1) 내가 어찌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하고 바라리오(Bleek,Wette).

(2) 내가 무엇을 하리요?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Alford,Meyer,Stier).

(3) 이 불이 붙었으면 더 바랄 것이 무엇이뇨(Plummer).

(4) 이 불이 이제 붙어지기를 내가 얼마나 바랐는가?(Marshall).

 

이 가운데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로 번역하고 있는

한글 킹제임스 성서에 따라 (3)(4)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본 구절 전체의 의미는

예수께서 궁극적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는 심판을 내리러 오셨는데

그 불이 결정적인 의미에서는 아직 타오르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12:50]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나는 받을 침례가 있으니 - 여기서 '침례'는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의미하며,

 

(10: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느냐),

 

바울도 이 사실을 재차 확언하고 있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이루기까지 - 이는 '완성하다'의 의미이며 이는 예수가 인식하고 있고

맞아들이려고 하는 그의 죽음이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취해야할 사명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Kline).

 

답답함이 -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완성되어야 할 사명으로 인식하고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그의 길을 걸어가고 있지만

그 일은 결코 일시적 결단이나 가벼운 노력에 의해 성취될 성질이 아니라

실로 고통스러운 도전이었다.

 

골고다 언덕이 점점 가까와 옴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닥치는

인간으로서의 고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이다.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 예수의 오심이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평화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심판을 선행 요건으로 하는 것이다.

 

(49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따라서 예수의 오심은

선과 악, 참과 거짓, 진리와 비 진리간의

갈등과 분열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기 위해 오신 것이다.

 

(10: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12:52] 이 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 이는 앞에서 언급한

'분쟁'의 성격을 밝혀주는 것으로

그 비극의 심각성과 비참성을 잘 보여준다.

 

이것이 최악의 상태인 까닭은

분쟁이 가족 안에서까지 일어나며

그 결과는 천륜이라 할 수 있는 혈연관계마저 깨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10:21과 막 13:12와 같은 맥락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이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당하게 될

고난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데,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13:12 형제가 형제를, 아버지가 자식을 죽는 데에 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신자와 비신자라는 형식 때문에가 아니라

신자의 진리성과 비신자의 비 진리성의 충돌로 인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12:53]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딸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 -

 

앞 절에서 언급한 '다섯 사람'이 구체적으로 열거되고 있다.

이 집은 아버지, 어머니, 결혼한 아들내외, 그리고 아직 출가(出嫁)하지 않은

딸로 이루어진 5인 가족이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짝 글들은 미 7:6 에서 온 것으로,

가족의 비극적 분열을 강조하기 위하여 서술된 표현이다.

 

(7:6 아들이 아버지를 멸시하며 딸이 어머니를 대적하며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대적하리니 사람의 원수가 곧 자기의 집안 사람이리로다)

 

 

복음을 받아들여 예수를 따르는 성도들은 예수와 가족들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수 있음을 각오해야 하며

그것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될 것이다.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18: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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