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에 대한 권면
성 경: [눅 12:6-12]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눅 12: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 4, 5절에서는 인간들로부터 오는
박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겨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하나님이 제자들을 철저한 관심 속에 보살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제자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주고 있다.
(4-5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앗사리온'은 드라크마의 1/10, 데나리온의 1/16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적은 액수라고 할 수 있다.
본문에서 강조되는 것은
새가 보잘 것 없이 작으며 그 가치도 결코 대단치 않다는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 참새 다섯 마리의 중요성과 가치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무시해도 무방할 만큼 미미한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 단 한 마리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사람들 특히 제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애정이
얼마나 지극한 것인가를 보증해 주는 셈이다.
한편 본문은 날이 갈수록 인명(人命) 경시(輕視) 풍조가
그 세(勢)를 더해가는 작금의 세태에 대한 하나의 경종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눅 12: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바 - 하나님께서는 머리털로 비유되는
삶의 사소한 부분까지도 세심하게 관심을 가지고 계실만큼
인간의 총체적 삶을 완벽하게 돌보신다는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의 완전한 보호하심을 나타내는 히브리 용법으로
구약성서에도 이와 유사한 표현이 엿보인다.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삼상 14:45 백성이 사울에게 말하되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결단코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옵나니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은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여 백성이 요나단을 구원하여 죽지 않게 하니라;
왕상 1:52 솔로몬이 이르되 그가 만일 선한 사람일진대 그의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그에게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행 27:34 음식 먹기를 권하노니 이것이 너희의 구원을 위하는 것이요 너희 중 머리카락 하나도 잃을 자가 없으리라 하고).
이렇게 완벽한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제자들은
아무것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 앞절에서 언급된 '하나라도'와 대조를 이루면서,
단 한 마리의 참새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하나님이
하물며 많은 참새를 합한 것보다 귀중한
제자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사실을 논리정연하게 강조하고 있다.
[눅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 본문에서 반복되고 있는
'앞에서'(엠프로스덴)는 공개적인 고백을 강조하는 말로
판사 앞에서 증언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나를 시인하면'(호몰로 게세 엔 에모이)을 직역하면 '내 안에서 고백하면'의 뜻이 된다.
이것은 예수께 대한 고백이 단지 하나의 당위성 때문에가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 안에 사는 삶의 결과로서 표현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뜻한다.
살아 계신 주님과의 신령한 교제와 아울러
구체적인 결실을 맺어 보이는 생명력있는 신앙 고백이야말로
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절실히 요청되는 자태(姿態)이다.
마태의 본문은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대신,
"내 아버지 앞에서"로 서술되어 있는데,
누가는 법정에서의 증언을 염두에 두고 있고,
마태는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눅 12:9]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 -
앞절에서의 긍정적인 약속이,
여기에서는 부정적인 심판의 가능성으로 제시된다.
예수를 부인한다는 말은 단지
사람들 앞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예수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교만이나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고
그의 가르침을 반대하는 행위까지도 모두 포함된다.
한편 8,9절 전체의 의미는
바른 신앙적 삶에 대한 격려와
비신앙적 삶에 대한 심판 경고 등 양자를 모두 포함하지만,
문맥상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분노에 의한 핍박이
예상되는 대목이라는 점에서
후자의 의미가 조금 더 강하다고 볼 수 있다.
(11:53-54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눅 12:10]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받으려니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사하심을 받지 못하리라 -
마태와 마가는 바알세불 논쟁과 관련하여 본문의 말씀을 다루어가고 있는데 비해,
(마 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막 3:28-2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모든 모독하는 일은 사하심을 얻되
29)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
누가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증인의 자리에 담대히 서라고 격려하는 문맥에서 이 말씀을 기록한다.
그러나 위 말씀들의 의미는 거의 동일하다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눅 12:11]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에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 이 말씀은 제자들이 당할 고난 중
죄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 것에 관한 내용이다.
'회당'이 유대인의 법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이방인의 법정을 뜻한다고 볼 수 있고
'회당'이 종교로부터의 핍박을 뜻한다면,
그 외의 것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핍박을 뜻할 수 있다.
제자들은 동족과 이방인, 종교와 정치 세력으로부터 오는
모든 종류의 핍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나
성령께서 함께 하는 한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격려의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삼엄한 산헤드린(Sanhedrin) 공회나 로마에서 파송된
총독의 법정 앞에서 스데반 혹은 바울 등이 담대히 진리의 증거자로
설 수 있었던 것도 성령께서 함께 해 주셨기 때문이다.
(행 7:2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24:10-21 총독이 바울에게 머리로 표시하여 말하라 하니 그가 대답하되 당신이 여러 해 전부터 이 민족의 재판장 된 것을 내가 알고 내 사건에 대하여 기꺼이 변명하나이다
11) 당신이 아실 수 있는 바와 같이 내가 예루살렘에 예배하러 올라간 지 열이틀밖에 안 되었고
12) 그들은 내가 성전에서 누구와 변론하는 것이나 회당 또는 시중에서 무리를 소동하게 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으니
13) 이제 나를 고발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능히 당신 앞에 내세울 것이 없나이다
14) 그러나 이것을 당신께 고백하리이다 나는 그들이 이단이라 하는 도를 따라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15)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16) 이것으로 말미암아 나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17)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
18) 드리는 중에 내가 결례를 행하였고 모임도 없고 소동도 없이 성전에 있는 것을 그들이 보았나이다 그러나 아시아로부터 온 어떤 유대인들이 있었으니
19) 그들이 만일 나를 반대할 사건이 있으면 마땅히 당신 앞에 와서 고발하였을 것이요
20) 그렇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내가 공회 앞에 섰을 때에 무슨 옳지 않은 것을 보았는가 말하라 하소서
21) 오직 내가 그들 가운데 서서 외치기를 내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오늘 너희 앞에 심문을 받는다고 한 이 한 소리만 있을 따름이니이다 하니).
‘대답하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폴로게세스데'는 전문적 법률 용어로
'법적으로 자신을 옹호하거나 변호하는 발언을 하다'는 뜻이며
본 구절이 법정에 서게 되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뒷받침 하는 말이다.
제자들은 두 가지 의미에서 자신들을 변호해야 할 것이다.
(1) 자신들의 육체적 안전을 위해 무죄함을 변호해야 하고,
(2) 자신들이 선포하고 행하는 사역의 정당성을 변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하여 법정의 심판관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눅 12:12]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
▶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 '곧 그때에'라는 표현은
제자들이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성령의 도우심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극적으로 표현해 준다.
성령께서 제자들을 위기 상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출해 준다거나
방해 세력을 분쇄한다고 말하지 않고
꼭 필요한 말을 가르치신다고 하신 점에 유의하자.
이것은 성령께서 결코 기적이나 무력을 사용하기 보다는
제자들을 무력한 객체로서가 아니라 주체로서
그리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며
위기의 상황 조차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시는 정공법(正攻法)을 채택하신다는 것을 암시 한다.
이 약속의 말씀은 베드로,
(행 4:8-12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이르되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9)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10)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스데반,
(행 6: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바울 등에게서 실제로 성취되었다.
(딤후 4:17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