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2일 화요일

그들의 온 무리가 일어나 그분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그분을 고소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빌라도와 헤롯 앞에 서신 그리스도

 

(23:1-12) 그들의 온 무리가 일어나 그분을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2) 그분을 고소하기 시작하여 이르되, 우리가 보니 이자가 민족을 그릇되게 하고 카이사르에게 공세 내는 것을 금하며 스스로 그리스도 곧 왕이라 하더이다, 하매

3) 빌라도가 그분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들의 왕이냐? 하니 그분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그렇게 말하는도다, 하시니라.

4) 이에 빌라도가 수제사장들과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 하매

5) 그들이 더욱 사나워져서 이르되, 그가 온 유대인 거주지에서 두루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이곳까지 와서 백성을 선동하나이다, 하니

6) 빌라도가 갈릴리라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이 갈릴리 사람인지 물어

7) 그분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곧 헤롯에게 그분을 보내었는데 그때에 헤롯도 예루살렘에 있더라.

8) 헤롯이 예수님을 보고 크게 반가워하니 이는 그가 그분에 대해 많은 것을 들었으므로 오랫동안 그분을 보기를 원하였고 또 그분께서 행하시는 어떤 기적을 보려고 바랐기 때문이더라.

9) 그때에 그가 많은 말로 그분께 물으나 그분께서 아무것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10)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맹렬히 그분을 비난하더라.

11) 헤롯이 자기 군사들과 함께 그분을 무시하며 조롱하고 그분께 화려한 긴 옷을 차려입히고 그분을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라.

12) 바로 그 날 빌라도와 헤롯이 함께 친구가 되었더라. 그들은 전에 서로 원수 사이였더라(KJV 한글)

 

 

 

우리 주 예수께서는 종교적인 법정에서 "모독자"로 정죄 받으셨다.

그러나 그들의 법정이 의도하는 대로하기엔 너무도 "악한 범죄"였다.

그들이 그를 "정죄"하였으나

그들이 그를 "사형에 처할" 수 없음을 알고 그래서 다른 방도를 구하였다.

 

 

. 그들은 빌라도 앞에서 그를 고소하였다.

 

더 이상 자기들의 법정에서 그를 어떻게 할 수 없음을 알고,

"무리가 다 일어나," 그 날은 재판하는 날도, 심문하는 날도 아닌데도

"그를 빌라도에게 끌고 갔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를 모독자가 아닌(그런 죄목으로 빌라도가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로마 정권에 불만을 가진 자로 고소하며 그를 심판할 것을 요구하였다.

설혹 예수가 그런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그들에겐 그것이 죄가 될 수 없었으며

그것이 죄라 할진대 그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그와 같은 죄로 심판 받을 입장이었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악의를 교묘하게 숨기려는 술책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이 그리스도를 파멸시키기 위하여

로마의 권세를 이용하는 이 "꾸며진 음모"야말로 "진짜" 음모로,

로마 권세가 머지않아 그들을 파멸시킬 것이었음을 명심하자.

 

1. 그리스도에 대한 고소 내용.

 

(2절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그리스도를 고소하며 그들은 빌라도의 마음에 들도록 아첨하며

가이사에게 충성하는 것처럼 꾸미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그런 행위는 예수를 헤하려는 "음모"외엔 전혀 다른 뜻이 없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거짓 증언하였다.

 

(1) 백성들로 "가이사에게 반역하도록" 했다고 증언했다.

 

로마 통치 밑에 있던 백성들에겐 불만이 널리 퍼져 있었으며

그들은 단지 로마 정권이 무너지는 것 외엔 바라는 것이 없었다.

이것은 사실이며 빌라도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빌라도로 하여금 이와 같은 불만을 자극해

반란을 일으키려던 자가 바로 그 앞에 있는 예수임을 믿게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실을 규명한다면 그들이 오히려

백성들의 불만을 조성하고 야기 시키는 자들임이 밝혀질 것이다.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백성을 미혹하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통치로 돌아오게 한 것을

마치 정치적인 통치에 반역하는 것처럼 여겼다.

그러나 사실은 백성들을 선한 종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신실된 일군으로 삼으려는 것 이상의 다른 뜻은 없었다.

 

그리스도는 특히 백성들 가운데서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거부하려는 자들이 있음을 알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쳐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예수는 여기서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한 것처럼

억울한 고소를 당하고 있다.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중상모략에 대항할 수 없다.

 

(2) 그가 "가이사와 대적"하려고 했다고 거짓 증언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를 배척하고 그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히려 그가 세상적인 권능과 위엄을 지니고 나타나지 않았고,

이 세상의 임금으로 등극하지도 않았으며

가이사에게 대적하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는데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가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고 말하며 이런 죄목으로 씌우고 있다.

 

그는 자신을 "그리스도" 또는 ""이라고 칭하였으나

이것은 가이사에게 타격을 줄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많은 기적을 행함으로 만약 그가 가이사와 싸울 태세만 갖춘다면

가이사라도 꼼짝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지만,

그를 따르던 자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고자 할 때 그는 이것을 거부하셨다.

 

(6: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2. 고소 내용에 대한 변론.

 

(3절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에 그는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 "네가 말한 그대로이다. 나는 유대 민족의 왕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종교의 문제에 있어 백성들을 탄압하고 있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 대적하는 왕권이지,

정치적인 관심에만 집중하는 가이사의 통치에 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써 가이사의 통치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또는 "네 말이 옳도다. 그런데 너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겠는가?

무슨 증거가 있는가?"란 의미도 담겨져 있다.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가 가이사의 최고 권력에 반대하며,

혹은 가이사가 보낸 통치자들에 반역하려고

"유대인의 왕"처럼 꾸민 적이 전혀 없음을,

오히려 그 반대임을 알고 있었다.

 

3. 빌라도가 그의 무죄를 선포함.

 

(4절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하니).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그 재판을 방청하고 있던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 그가 너희 법의 어느 조항을 어겨 죄를 지었는가,

나는 알 바 아니지만 내가 보니 그는 내 법정에서 재판받을 만한 죄를 찾아 볼 수 없도다".

 

4. 박해하는 자들의 끈질긴 요구와 소란

 

(5절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빌라도가 그의 무죄를 선포함으로 이성을 되찾아 그들이 죄없는 자의

피를 흘리게 하려고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으나

오히려 그들은 더욱 격노하여 "굳세게" 고집을 부렸다.

 

그들은 뚜렷한 목적의식도 없이,

증명할 충분한 증거도 없이 고집부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단지 소란과 배짱을 가지고 증거도 없이 소리쳤다.

 

"저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가이사에게 반역하라고 백성을 소동케 하나이다".

 

그가 백성을 소동케 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인위적이고 난동을 피우려는 것이 아니었고

고결하고 찬양할 만한 모든 일을 위한 것이었다.

그가 "가르친 것"은 사실이나,

그가 공공의 질서를 파괴하거나 정권을 위협하거나 미워하라는

교훈을 가르치지 않은 이상 그들의 비난은 정당한 것이 될 수 없었다.

 

 

. 그들은 헤롯 앞에서 그를 고소하였다.

 

1. 빌라도는 그를 헤롯의 법정으로 넘겼다.

 

이는 그를 비난하는 자들이 갈릴리란 말을 언급하였기 때문이었다.

갈릴리는 가나안 북부 지방에 속하였다.

빌라도는 "그가 그 지방 출신이냐?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들은 ", 그곳이 그의 주거지입니다. 그는 거기서 거의 모든 시간을 보냈읍니다"

대답하였다.

"그렇다면 그를 헤롯에게 보내자. 헤롯이 지금 예루살렘에 있으니

이 문제는 그가 맡는 것이 타당하다. 이 죄인은 그의 관할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다."

 

빌라도는 이 사건에 식상(食傷)하였고 어떻게 하든 이것에서 손을 떼고자 하였다.

이것이 그를 헤롯에게 보내는 진짜 이유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께서 성서의 말씀을 보다 확실하게 성취하시려고

이런 과정을 겪게 하신 것이다.

 

사도행전 426, 27절에 나타난

 

(4:26-27)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고 한

다윗의 말씀은 헤롯과 빌라도의 법정에서 완전히 이루어졌다.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2. 헤롯은 그를 시험하고 싶어했다.

 

(8절 헤롯이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 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러라).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헤롯은 예수를 죄인으로 보게 되어, 자기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어 더 기뻤을 것이다.

 

그는 갈릴리에서 "그의 소문을 들었"을 것이다.

갈릴리에서 행한 기사와 이적으로 그곳 사람들 사이엔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고자 한지 오래였다".

 

그의 교훈에 대한 감동 때문이 아니라 단지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이나 이적을 행하심을 보고 싶어하는"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함이었고

그렇게 되면 그가 사는 날까지 그의 이름도 오래 입에 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것을 위하여 그는 "여러 말로 물어" 그가 그의 권능을 보일 수 있는

무슨 일이든 하도록 해보려는 심산이었다.

 

아마도 그는 "비밀"에 속한 것, "장차 될 일," 혹은 병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시험해 보고자 재촉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무 말도 대답하시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함으로 그의 호기심을 만족시켜 주시려 하지도 않았다.

 

"가련하디 가련한 걸인이 빈곤에서 해방되기 위해 기적을 요구할 때엔

한 번도 거절당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단지 자기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 기적을 요구하는

자만한 왕의 요청은 거부하셨다.

헤롯은 갈릴리에서 그리스도와 그의 놀라운 행적을 볼 기회가 많이 있었으나

"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가 보고자 하였으나 "볼 수 없었다"는 표현은 타당한 말이다.

 

기적은 그 헤롯의 눈에 가리워 졌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방문 날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헤롯은 생각하기를,

이제 예수가 그의 손아귀 안에 있으므로 그에게 기적을 "명령할" 수 있겠다 하였으나

기적은 값싸게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며,

아무리 위대한 권세가라도 전능하신 분을 그의 손으로 좌우할 수는 없다.

 

3. 예수를 핍박하는 자들은 헤롯 앞에서도 그를 비난하였다.

 

그들은 지금 핍박하는 일에 눈 코 뜰새 없었다.

(10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서서 힘써 고발하더라).

 

말 그대로 뻔뻔스럽고 기고만장하여 떠들어댔다.

그들은 헤롯으로 하여금 그가 치안을 방해한 죄인을

구금하고 있다는 사실로 믿게 하려고 애썼다.

정치적인 권세에 대해 현실적이며 유익한 친구가 되는

선한 사람이나 선한 목회자들이 권세에 대적하며 선동하고 소동을 일으키는 자로

어이없는 고소를 당하는 것이 새삼스런 일이 아님을 주목하자.

 

4. 헤롯은 그를 대단히 "못살게" 굴었다.

 

그는 그 "군병들"과 그의 신하들과 시종들,

고급 관리들과 함께 그를 "업신여겼다".

그들은 그를 "무시했다." 말 그대로이다. 무서운 죄악이다.

 

"만물을 만드신 분을 업신여기다니," 그들은 그를 바보처럼 희롱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가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하게도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해 주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자신을 위해서 한 가지 정도 못할 이유가 있는가?

아니면 그는 자기 능력을 잃고 이젠 보통 사람들과 같게 되었다고 희롱하였을 것이다.

침례 요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헤롯은

빌라도보다 그리스도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을 것인데도

빌라도보다 더 그를 "못살게 굴었다."

왜냐하면 은혜가 없는 지식은 사람을 "더 교활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헤롯은 그리스도에게 마치 가짜 왕에게 하듯

"빛난 옷," 번지르르하게 칠한 의복을 입혔다.

그리고 빌라도의 군인들에게도 그를 계속 이런 식으로 대접하라고 가르쳤다.

그는 이런 심술에는 주모자였다.

 

5. 헤롯은 그를 다시 빌라도에게 보냈다.

 

이것은 그들의 친교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이전에 얼마 동안 그들 사이는 별로 좋지 않았었다.

헤롯은 기적을 구경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를 범죄자로 정죄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를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

 

(11절 헤롯이 그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빛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도로 보내니).

 

이처럼 죄인을 그에게 보냄으로 빌라도에게 충성과 존경을 표시하였다.

이번 기회를 통해 그들 사이에 서로 오고 간 서신과 상호 연락을 통하여

그들의 지금까지의 관계를 보다 친분 있는 관계로 만들 수 있었다.

 

(12절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그들은 "전에는 원수이었다".

 

그 이유는 아마 헤롯의 관할인 갈릴리인들을 빌라도가 학살한데서 비롯되었거나

아니면 고급 관리들 사이에 늘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논쟁 때문이었을 것이다.

 

(13: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서로 싸우던 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일로

다시 연합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이는 마치 그발, 암몬과 아말렉 등이 서로 불목하다가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대적할 때엔 연합하는 것과 같다.

 

(83:7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

 

그리스도는 위대한 화해자이다.

빌라도나 헤롯은 예수님의 무죄를 인정하고 있었다.

이 점에 그들이 서로 동의함으로 그들은 다른 일에서도 서로 화해하게 된 것이다.

 

*메튜 헨리의 주석을 참조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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