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부인(否認) 예고
성 경: [눅 22:31-34]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
유다의 배신을 예고하였듯이 예수는 제자들에 대한 격려와
보상에 대한 약속을 한 직후 베드로의 배신(背信)을 예고한다.
그러나 독특한 점은 유다의 배신 예고에서는 언급한 바 없는
사단의 역할에 대해서 예수가 직접 언급한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배신에 대한 ‘저주와 경고’라기 보다는
애정을 담고 있는 충고와 걱정이다.
특히 여기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이름을 두 번씩 반복하여 부름으로써
충고의 간절함을 강조한다.
그리고 '사단이 청구했다'는 표현은
배신의 행위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타자적(他者的)인 악령의 힘에 의해 이끌리게 될 것임을 암시한다.
한편 '까부르듯 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시니아조'는
'체를 흔들다', '체를 치다'는 뜻이다.
본절에 은유적으로 사용된 이 단어의 정확한 적용례(paradigm)를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대체로 다음 세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는,
알곡과 쭉정이를 걸러내는 시련을 통하여 참된 제자와 거짓 제자들을 분리한다는 견해이다(Jeremias).
둘째는,
사단이 시련의 체를 통해 제자들을 참소(讒訴)할 증거들을 찾고 있다는 견해이다(Foerster).
이는 하나님 앞에서 의인인 욥을 시험하여 악한 증거를 찾아
욥을 공격하고자 했던 사단의 시도를 상기케 한다.
(욥 1:6-12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셋째는,
여기서 체를 흔드는 것은 제자들을 구분하여 걸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그들의 믿음을 입증시켜 주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
(Lanrange, Fuchs, Schurimann).
이 세 견해 중 두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성이 있다.
곡식을 체질하는 것은 원래 쪽정이를 날려 보내기 위한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예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이라는 전후 문맥으로 보아
첫 번째와 세 번째 견해는 각각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니고 있거니와
문제는 제자들이 시련의 와중에서 넘어지느냐 아니면 이기느냐하는 점이다.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 여기서 배신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보여준다.
다시 말해 배신의 책임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예수는 베드로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굳세 지기를 기도했다고 말하는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믿음이 떨어질 때 예수께 대한 배신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예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베드로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것이다.
▶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의 특별한 위치를 시사해 준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다른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해 주는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베드로가 제자들 중에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음을 암시해 준다.
뿐만 아니라 예수가 베드로에게 가장 큰 신뢰를
갖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케 한다.
여기서 '돌이킨 후'의 헬라어 '에피스트레포'는
'회개한다', '돌아선다'의 뜻으로 사용된다.
베드로가 변절(變節)할 것이라는 직접적인 예고없이
'회개하다'라는 말을 함으로써 변절을 간접적으로 전제한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가서
제자들을 향해 슥 13:7을 인용하여
'너희 모두가 나를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신 것을 기록한다.
뿐만 아니라 부활하여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을 예언하고 있는데,
(마 26:30-32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31)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32)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막 14:26-28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나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누가는 이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누가는 제자들의 자랑스럽지 못한 변절의 모습을 축소하고
완곡한 형태로 수정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눅 22:33]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 베드로는
예수의 말 속에서 암시된 뜻을 이해하고 예수와 함께
끝까지 같은 길을 가겠다고 호언(豪言)한다.
마태와 마가는 다른 사람이 다 버려도 자신은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남과 비교하여 강경하게 장담한다.
(마 26:33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막 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전체적으로 마태와 마가는
베드로의 충성하겠다는 장담과 변절을 극명하게 대비시켜 베드로의 변절을 강조한다.
반면 누가는 베드로의 변절을 부드럽게 묘사한다.
베드로는 천성적으로 성격이 매우 급한 충동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인정받기를 좋아하고 자기 자신을 과시하며 자랑하기를 즐겨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충성스러웠고 주를 사랑하고 남 사랑하는 마음이 강하고
아울러 훌륭한 통찰력(通察力)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굴하지 않겠다는
자기 과신(self-confidence)에 빠진 베드로는
끝내 난관에 부딪혀 예수를 부인하는 우(愚)를 범하게 된다.
[눅 22:34]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 베드로야 - 요 1:42에 의하면 베드로라는 이름은
예수가 직접 지어준 '반석'이란 뜻의 이름이다.
(요 1: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렇게 예수 자신이 직접 베드로라는 이름을 부른 것은
이곳에만 나타나는데 각별한 의미를 시사해 준다.
즉 베드로라는 이름이 반석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변할 수 없는 굳고 단단한 의지로 믿음을 지켜야한다는 것을
베드로에게 일깨워 주고자 하는 듯하다.
▶ 오늘 닭 울기 전에 -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는 변절의 정확한 시각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오늘'이란 유월절 식사를 마친 후에 언급된 시간이라는 점에서
유월절을 하루 넘긴 니산월 15일이다.
또 유대인의 시간 분배가 해질녘부터 다음 날 해질 때까지를
하루로 계산하기 때문에 15일 새벽 닭 울기 전이라고 보면 된다.
막 13:35에 보면 시간을 한밤중과 닭 울 때,
그리고 새벽을 따로 구분하는데 동틀 새벽 이전의 깊은 새벽이 닭 울 때임을 시사한다.
(막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따라서 닭 울기 전이므로 새벽 3시경으로 시각을 추측할 수 있다.
이 시각은 세 복음서 모두 공통되게 언급하고 있는데
마가는 독특하게 닭이 두 번 울기 전이라고 언급한다.
(60-61 베드로가 가로되 이 사람아 나는 너 하는 말을 알지 못하노라고 방금 말할 때에 닭이 곧 울더라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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