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11일 금요일

감람산에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감란산의 고뇌

 

(22:39-46) 그분께서 나아가사 늘 하시던 대로 올리브 산으로 가시매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더니

40) 그분께서 그곳에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에게서 물러나 돌을 던지면 닿을 수 있는 곳으로 가사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이 아니옵고 오직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하늘로부터 한 천사가 그분께 나타나 그분을 강건하게 하더라.

44)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45) 그분께서 기도를 마치고 일어나 자기 제자들에게 오사 그들이 슬픔에 지쳐 잠든 것을 보시고

46)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하여 자느냐? 너희가 시험에 빠지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한글 KJV)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가 배반당하시기 바로 전,

"동산에서 괴로워하시는 모습"을 읽게 된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이 부분을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고뇌로 그리스도는 그가 이제 막 시작하려는 하나의 사업 - 자신의 영혼을 죄의 대속물로 바치는 일의 한 부분에 자신을 적응시키셨다.

 

그가 갚아야 할 (인간의) 죄로 인하여 얻은 슬픔 속에 그의 영혼은 괴로움을 겪었으며,

죄로 인하여 인간이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생각할 때 그는 자신이 미웠을 것이며,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제물을 남김없이 태우는 것이

그 제물은 흠향 되었다는 확실한 증거이므로 이제 그야말로

이와 같은 제물로 드려지기에 합당한 자임을 느꼈을 때 괴로워하였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어둠의 세력이 짜놓은 과정 속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들이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을 그들에게 맡기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는 그들을 정복하고 말았다.

 

 

. 내용.

 

1. 밤중이었는데도 그리스도는 나가 먼 길을 걸었고

"제자들"(유다를 제외한 열한 제자)"그를 따랐다."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시험 중에도 그와 함께 한 그들이었으므로 지금도 그를 놓치지 않았다.

 

2. 사사로운 "습관을 좇아" 감람산으로 가셨다.

 

이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습관적으로 쉬는 곳이 있었으며

종종 홀로 계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우리도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마음의 거리낌 없는 대화를 위하여

그렇게 할 것을 가르치고 있다.

 

그리스도에겐 등산밖에 편안히 쉴 만한 장소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곳을 찾아가 쉬셨다.

우리가 주의 만찬에 참석한 후 특히 실천에 옮길 일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도 개인적인 시간을 요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

 

3. 그는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시련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시련으로 죄를 짓게 되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권면하였다.

 

즉 그들에게 너무나도 놀랍고 위험한 일이 닥치더라도

그리스도를 버릴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당부하셨다.

 

"너희가 죄를 멀리 하도록 기도하라".

 

4. 그리고 그는 그들을 떠나 혼자 기도하셨다.

 

은혜의 자리엔 그들 각자의 용무가 있고 그리스도도 자기의 용무가 따로 있다.

그러므로 때로는 그들이 각기 떨어져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며

그들이 연합해서 이룰 용무가 있을 때엔 함께 기도하는 것이 합당하다.

 

그는 "돌 던질 만큼" 더 동산 속으로 들어갔다.

어떤 주석가는 이 거리를 50, 60보 정도로 추산한다.

그리고 거기서 맨 땅에 "무릎을 꿇었다".

 

다른 복음서 기자는 "얼굴을 땅에 대신" 후에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쨌든 그곳에서 "기도"하셨다.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고통의 잔들, 이 쓴잔을 "내게서 옮겨 주시옵소서."

이 말씀은 죄 없는 인간이 고통을 두려워함으로 나온 말이었다.

진정한 인간이라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이 말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5. 그러나 자기가 고난을 받고 죽어야만 하며,

현재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그의 고난과 죽음이

우리의 구속과 구원에 필수적인 요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나서 그는 그 간구를 포기하고 계속 조르지 않고

완전히 자신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게 되었다.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내 인간의 본능대로 마옵시고,

두루마리 책에 관해 기록한 대로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원대로 하옵소서"(40:7-8).

 

6. 그가 기도하고 있는 동안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제자들도 그때엔 각자 기도하고 있어야만 하였다.

 

(45절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그가 "기도 후에 일어나" 보니 "제자들은" 그의 슬픔엔 관심도 없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여기엔 다른 복음서에선 읽을 수 없는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슬픔을 인하여 잠들어 있었다."

 

그날 저녁 선생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눈물겨운 이별의 슬픔으로

그들의 영혼은 지쳐 있었고 몸도 마음도 둔하게 만들어

(이제 상당히 늦은 시각이었으므로) 그들을 잠들게 하고야 말았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우리 형제들의 약점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다른 것보다 유리한 조건이 있으면

거기에다 약점들을 모두 전가시키도록 가르치고 있다.

 

7. 그들을 깨우고 나서 그는 그들에게 기도할 것을 당부하셨다.

 

(46절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어찌하여 자느냐? 어찌하여 잠이 오도록 가만 두었느냐?

일어나 기도하라. 기도하기에 합당하도록 졸음을 떨쳐 버리라.

그리고 능히 너희가 졸음을 떨쳐 버릴 수 있도록 은혜를 간구하라."

 

이 말씀은 폭풍 속에서 선장이 요나에게 한 말과 같다.

 

(1: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외부의 환경으로나 내적인 감정으로 시험에 들려고 하면

우리는 "일어나 기도"해야만 한다.

 

주여, "궁핍한 때"에 나를 도우소서.

 

 

. 다른 복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사실이 세 가지 있다.

 

1. 그리스도께서 괴로워하실 때 "사자(천사)가 하늘로부터 나타나 그의 힘을 도왔다".

 

(43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1) 우리 주 예수께서 천사의 도움이 "필요했으며" 그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그의 깊은 굴욕을 나타내는 예가 된다.

당시로써는 신성(神性)의 힘이 없어졌으므로 그의 인성(人性)만으로는

"천사보다는 약간 낮은" 상태에서 천사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처지에 있었다.

 

(2) 그는 고통에서 해방되지는 않으셨지만 천사들을 통해 힘을 얻고 격려 받았다.

그 고통이나 위로는 서로 상쇄되었다.

하나님께서 각자 어깨에 짐을 지워 주실 때엔 우리로선 불평할 이유가 없다.

어떻게 분배하시든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맡겨야 한다.

 

다윗은 고난받는 중에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장려하여 강하게 해 주신"바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138:3).

다윗의 자손(예수 그리스도)도 또한 같은 응답을 받았다.

 

(3) 천사들은 고통 중에 있는 예수를 돌보았다.

그는 천사들의 군대를 동원해 자신을 지킬 수도 있었다.

그뿐 아니라 마음만 먹는다면 그를 잡으려고 찾아오는 무리들을

물리쳐 굴복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군대의 힘을 단지 그의 "힘을 돕는 데"만 썼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은 잠들어 있고 그의 적들은 깨어 있을 그때에

슬픔 중에 있는 그를 천사들이 방문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되어 그에겐 대단한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천사)는 아마도 그에게 힘을 돕기 위하여 "무언가 말했을" 것이다.

그가 받는 고난은 그의 아버지의 영광과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하며,

그에게 주어진 자들의 구원을 위한 것임을 깨닫게 하며,

그 앞에 기쁨이 놓여 있다는 것을, 그 열매를 보게 되리라는 것을

그의 마음속에 일러 주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말로 천사는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계속 나갈 것을 격려하였을 것이다.

 

위로가 곧 힘이 되었다. 천사는 아마도 그의 힘을 돋우기 위해 "무언가 했을" 것이다.

그의 땀과 눈물을 씻어 주었다든가, 시험이 끝났을 때처럼,

 

* 참조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그에게 다소나마 용기를 북돋우었거나, 아니면 그의 팔을 부축하여

땅에서 일어나 것을 돕거나 또는 그가 기진하였을 때 부축하였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천사의 수종을 통하여 성령은

evniscu,wn auvto,n - 즉 그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힘을 돕는다란 말의 의미하는 바가 이와 같다.

 

"그를 상함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였다."

그렇지만 "그가 그의 권능으로 그를 대적하였는가?“

 

아니다. 시편 8921, 이사야 498, 507절에 약속하신 대로

오히려 그는 "그에게 힘을 넣어 주셨다".

 

(23:6 그가 큰 권능을 가지시고 나와 더불어 다투시겠느냐 아니로다 도리어 내 말을 들으시리라).

 

2.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더욱 열심히 기도하셨다".

 

(44절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슬픔과 괴로움이 그를 덮치면 덮칠수록 그는 기도에 몰입하였다.

전에 그가 기도할 때엔 냉냉하고 성의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여느 때보다 더 뜨거운 열정이 담겨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그의 목소리와 몸짓에 나타나고 있다.

 

기도란 때를 타는 것이어선 안 되지만 우리가 괴로움을 당할 때 하는 기도는

특히 간절해야 한다.

우리의 괴로움이 크면 클수록 우리의 기도는 더욱 힘 있게 자주 해야만 한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5:7).

 

그리고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듯 그는 두려움 중에 "힘쓰고 애썼다."

 

3. 이와 같은 괴로움 속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같이 되었다."

땀은 죄와 함께 생겨났고 저주의 내용이었다.

 

(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와 저주를 지셨을 때,

그는 슬픔의 땀을 흘리게 되셨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의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그의 떡을 먹게 되었고

그는 우리에게 닥칠 모든 시험을 속량 하시고 갚아 주셨다.

 

이 구절에 대해선 해석이 분분하다.

여기서 말하는 땀은 보통 때 흘리는 땀방울보다 더 "크거나",

평소보다 땀구멍이 더 크게 되어서 땀을 "핏방울로 비유한" 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이 있고, 반면에 모세혈관이 터져 "진짜" 피가 나와 땀이 핏빛으로 보였으며

그런고로 "피땀"이라고 부른 것은 타당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문제는 별로 중요한 것이 못된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피를 흘리시던 때에 연결시키기도 한다.

 

"왜냐하면 피 흘림 없이는 용서함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땀구멍은 피가 맺힌 상처처럼 되었을 것이고 그의 피가 옷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것은 "그의 영혼이" 얼마나 "고뇌"에 빠져있는가 보여 준다.

그는 당시 쌀쌀한 계절에, 깊은 밤중에, 그것도 찬 땅 위에서 바깥 공기를 쐬며 있었다.

그런 환경에서 땀을 흘린다는 것은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이 아닌가.

그런데 그는 지금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괴로워하고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메튜 헨리의 주석을 참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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