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8일 월요일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십자가에 처형당하심

 

성 경: [23:33-38]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해골이라 하는 곳 - 예수가 처형되신 사형 집행 장소가 처음으로 언급된다.

 

그런데 여기서 정확한 지명은 언급되지 않고 '라고 불리워지는 곳'이라는

불명확한 어투가 사용된다.

이 어투와 같이 이 장소가 어디를 말하는지 고증하기가 어려운 문제로 남아 있다.

 

다른 사형수와 함께 처형한 점으로 보아

로마군의 공식적 처형 장소로 보이며 성 밖의

어느 곳에 있는 무덤 근처였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 지명은 해골(骸骨)이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붙여졌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지형이 해골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일 수도 있다(Bengel, Goldet, Plummer).

다만 분명한 점은 성문 밖이었다는 것이다.

 

(13:12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부가타(Vulgate)역 성경에서는 '해골'이라는 말을

칼바리움(Calvarium)으로 번역하여

갈보리(Calvary) 언덕이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곳을 마태와 마가는 히브리말로 '골고다'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27:33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15: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누가만은 헬라어로 번역하여 '해골'이라는 뜻을 지닌 '크라니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점으로 보아 누가는 헬라 문화권에 속한 이방 나라들에 대한 배려를

엄두에 두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 누가는 예수의 양 쪽에 범법자 두 명이

같이 못 박혀 있음을 말하고,

마태와 마가는 '강도'(레스타이)들이 양 쪽에 못 박혀 있는 것으로 묘사했다.

 

(27:38 이 때에 예수와 함께 강도 둘이 십자가에 못 박히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15: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마태와 마가는 예수의 좌우에 사랑하는 제자가 아닌

 

* 참조 : (10:37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흉악한 강도가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예수의 치욕스러움과 제자들의 비겁함을 부각시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누가의 의도는 제자들의 비겁함이나 예수의 치욕을 강조하기 보다는

22:37의 예언 성취를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22:37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누가가 '강도'라는 말 대신 다소 부드러운 표현인

'행악자'(카쿠르구스)를 사용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십자가에 못 박고 - 마침내 예수가 가장 잔인한 처형의 방법에 따라 못 박히는 모습이다.

 

누가는 못 박았다는 단순한 묘사를 하고 있지만,

마태와 마가는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마태는 못 박힌 시각이 제 3시경이라고 밝히는데

유월절(Passover) 다음날 오전 9시경으로 이해하면 된다.

 

마태와 마가는 십자가에 못 박은 것과 동시에

명패에 '유대인의 왕'이라고 씌어진 사실을 언급하는 반면

 

(27:37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15: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누가는 이후에 언급한다.

 

(38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따라서 마태와 마가는 조롱하기 위해 써 붙인 명패를 강조하는 반면,

누가는 나중에 조롱하는 장면과 함께 언급함으로써 그 효과를 다소 완화시킨 듯하다.

 

 

[23: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힌 뒤,

자신을 죽이고자 하는 무리를 향해 측은한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신다.

 

이 기도문은 누가만이 언급하고 있으며,

본문에 대한 진정성 시비가 문제로 남아있다.

왜냐하면 어떤 사본은 본문 구절을 괄호 안에 넣어 언급하는 반면,

대다수 사본은 본문을 생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J. Weiss, Klostermann, Easton, Creed, Schenk).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친히 실천하고 증명해 보이셨다는 점에서 적절한 문구로 보인다.

 

(5: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여기서 용서의 대상을 지칭한 '저들'은 사형 집행자인

로마 군인들만이 아니라 주범인 산헤드린(Sanhedrin) 대표와

그 음모에 가담했던 모든 죄인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본 구절을

28-31절에 언급된 내용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

 

(28-31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31) 푸른 나무에도 이같이 하거든 마른 나무에는 어떻게 되리요 하시니라)

 

고전 2:8의 증언대로 그들은

무지 가운데서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으며,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베드로의 설교 내용처럼 '생명의 주'를 죽였다.

 

(3:15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무지를 오히려 긍휼히 여기시고

그러한 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회개와 죄 사함의 자리로 초청하고 계신 것이다.

 

한편 이 말씀은 사복음서의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소위 예수의 '가상칠언'(架上七言) 중 첫 번째에 해당한다.

 

가상칠언의 내용을 한 단어로 요약해 본다면,

 

(1) (-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2) (-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3) (- 19: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4) (-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15: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5) (-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6) (- 19: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7) (- 46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 - 처형자들이 사형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 갖는 것은 당시의 관습에 따른 것으로 본다(Blinzler).

 

뿐만 아니라 시 22:18에서 언급된 예언의 성취로 볼 수 있다.

 

(22: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23:35]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

 

누가는 십자가 형장에 있던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으며

마치 백성들은 조롱하는 일에 가담하지 않는 것처럼 묘사한다.

 

반면 마태와 마가는 지나가는 사람도 예수를 모욕하며 조롱한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누가의 의도가 넌지시 드러나는데

누가는 예수에 대한 모욕 행위의 내용과 범위를 가능한 약화시키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지도자들의 모욕 장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여기서 '구하다'라는 말은

예수의 활동 가운데 치유 기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W. Foerster).

 

그리고 '하나님의 택하신 자'란 십자가 처형을 바라보며

군중들이 예수를 조롱하여 내뱉은 말이지만 기실은 중요한 의미를 내포한 말이다.

 

구약의 외경 에녹서에서는 이 말이 '하늘의 인자'를 가리키며,

본서 9:35에서는 '택함을 받은 나의 아들'이라고 나온다.

 

(9:35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

 

본 구절에서 누가는 이 단어를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택하신 자'란 의미로서 사용하였다고 봄이 타당하다.

 

즉 누가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택하신 분으로서 세상 구원을 위한

마지막 사역을 감당하고 계셨던 사실을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한편 이 같은 조롱 행위는 시 22:6-8에서 이미 예언된 바의 성취라고 볼 수 있다.

(22:6-8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23:36] 군인들도 희롱하면서 나아와 신 포도주를 주며

 

신 포도주를 주며 - 군병들이 예수께 신 포도주를 준 사실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이다.

 

(1) 군병들이 희롱하면서 신 포도주를 주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희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어서 먹기 힘든 포도주를 준 것으로 보인다.

사실이 그러하다면, 하루 전날 밤부터 물 한 모금 입에 대지 못하신

예수를 조롱하는 그들의 잔인성은 실로 지독하였다 할 것이다.

 

(2) 19:28에 나와 있듯이 예수께서

'목 마르다'(I am thirsty, NIV)고 하신 사실을 고려하건대

목을 축이기 위해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3) 또 하나는 사형 집행자가 관례에 따라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의무적으로 주었다는 주장(Zahn, Farrar)도 가능하다.

 

이 견해는 마취 효과를 내는 쓸개를 포도주에 탔다고 하는 마태의 기록이나,

 

(27:34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하지 아니하시더라),

 

시간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마시게끔 했다는

다른 두 공관복음서상의 기록 등에 의해 뒷받침 받는다.

 

그러나 시 69:21의 성취로 본다면 조롱하려는 목적이 강했음을 알 수 있다.

 

(69:21 들이 쓸개를 나의 음식물로 주며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

 

즉 먹을 수 없는 것을 주어서 고통을 가중시키고 수치스럽게 하려는 것이다.

 

 

[23:37] 이르되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네가 너를 구원하라 하더라

 

만일 유대인의 왕이면 - 로마 군병이 언급한 말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정치적 의미에서 예수를 희롱했다고 생각되며

그 이상의 문제에 대해서 그들은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특히 종교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몰랐을 것이고

다만 십자가상에 붙어있는 죄명을 보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아마도 그들은 자칭 왕이라고 사람들을 선동하던 사람쯤으로 생각해서

왕이면 자신을 사형(capital punishment)으로부터

면죄(amnesty)받게 하여 다시 살려보라는 투로 조롱한 듯하다.

 

마태는,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그리고 장로들이 함께 조롱하면서

종교적인 문제 즉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지 보자면서

또한 하나님의 아들이 증명되는지 보자고 하며 희롱한 것으로 묘사한다.

 

(27:42-44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리하면 우리가 믿겠노라

43) 그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원하시면 이제 그를 구원하실지라 그의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하며

44)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

 

아마도 마태는 유대인을 의식하여 문제 곧 종교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는 반면

누가는 이방인을 염두에 두고 정치적 문제에다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또 마태는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언급하여 이방인에게 익숙한 단어를 사용하였다.

 

 

[23:38]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 - 이 명패는 희롱하기 위한 목적으로 붙여진 것이다.

 

19:20에 의하면 명패는 3개 국어로 씌어져 있었다.

 

(19:20 예수께서 못 박히신 곳이 성에서 가까운 고로 많은 유대인이 이 패를 읽는데 히브리와 로마와 헬라 말로 기록되었더라)

 

즉 히브리어, 로마어, 헬러아로 되어 있고

또 그것을 빌라도가 직접 적은 것으로 언급된다.

 

(19:19 빌라도가 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붙이니 나사렛 예수 유대인의 왕이라 기록되었더라).

 

이 명패는 역설적(oaradoxical)으로

예수의 참된 신원(identity)을 밝혀주고 있는 바,

조롱하기 위해 붙여준 이름이

결국에는 부활을 통해 예수의 우주적 왕권을 확증하는 이름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수많은 영웅적인 왕들이

일세를 풍미하다가는 다 사라져 갔지만.

 

예수께서는 십자가상에서

그 절정을 보여주신 사랑으로 오고 오는 모든 세대,

모든 성도들을 통치하시는 위대한 왕이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