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들을 훈계하심 3
(눅 22:21-38) 그러나, 보라, 나를 배반하여 넘기는 자의 손이 나와 함께 상 위에 있도다.
22) 진실로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가거니와 그를 배반하여 넘겨주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하시니
23) 그들이 자기들 중에 이런 일을 행할 자가 누구일까 하고 자기들끼리 묻기 시작하더라.
24) 또한 그들 사이에 그분께서 자기들 중의 누구를 가장 큰 자로 여기실까 하는 일로 다툼이 있으매
25)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방인들의 왕들은 그들에게 주인 된 권리를 행사하며 또 그들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자들은 은인이라 불리나
26) 너희는 그리하지 말지니 너희 가운데 가장 큰 자는 어린 자와 같고 으뜸인 자는 섬기는 자와 같을지니라.
27) 음식 앞에 앉은 자와 섬기는 자 중에 누가 더 크냐? 음식 앞에 앉은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노라.
28) 너희는 내가 시험들을 당할 때에 항상 나와 함께한 자들인즉
29)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신 것 같이 나도 너희에게 한 왕국을 맡기어
30) 너희가 내 왕국에서 내 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며 또 왕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재판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31) 또 주께서 이르시되,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갖기 원하였으나
32)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쇠하지 않도록 기도하였은즉 너는 돌이킨 뒤에 네 형제들을 강하게 하라, 하시니
33) 그가 그분께 이르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감옥에도 죽는 데에도 갈 각오가 되어 있나이다, 하매
34) 그분께서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이 날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안다는 것을 세 번 부인하리라, 하시고
35)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짐 보따리와 신도 없이 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무슨 부족한 것이 있었느냐? 하시니 그들이 이르되, 없었나이다, 하매
36) 그때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나 이제 돈주머니가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짐 보따리도 그리하고 칼이 없는 자는 자기 옷을 팔아 하나를 살지어다.
3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기록된바, 그가 범죄자들 가운데서 계수되었도다, 한 이 말씀이 반드시 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리라. 나에 관한 일들은 끝이 있느니라, 하시매
38) 그들이 이르되, 주여, 보소서,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나이다, 하니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족하도다, 하시니라(KJV 한글)
2. 이런 시험에 대비하여 베드로에게 베푼 특별한 배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노니, 왜냐하면 사탄은 너희 모두를 넘어뜨리고자 원하고 있으나 다만 네게만 그의 수단을 다해 시험하도록 허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는 가장 강한 공격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네 믿음이 송두리째 남김없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다음 사실들을 유의하자.
(1) 시험에 넘어갈지라도 한 시간이라도 우리 믿음이 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가 완전히 굴복하는 것은 아니다.
믿음은 사탄의 불화살도 끌 것이다.
(2) 진실된 믿음의 사람들도 수차 믿음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그들의 믿음이 완전히 떨어지는 일은 없다.
믿음은 그들 속에 씨앗으로, 뿌리로 남아 있다.
(3) 제자들의 믿음이 때로는 안타까울 정도로 위태롭지만
그대로 무너지지 않은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와 간섭 때문이다.
만약 그들끼리만 버려 둔다면 그들은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권능"과 그리스도의 기도로 지탱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중재는 믿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일반적인 것일 뿐 아니라
어느 "특정한 " 사람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노니”.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우리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3. 베드로에게 그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원한다면 다른 형제들을 도우라고 분부하신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 굳게 하라. 너는 하나님의 은혜로 돌이켜 회개한 다음에 다른 형제들을 위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라. 너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았음을 발견한 후에 다른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고 세울 수 있도록 노력하라. 너는 하나님의 자비가 너와 함께 있음을 발견한 후에 다른 형제들에게도 그들 역시 자비를 발견할 수 있도록 희망을 주어라."
다음 사실들을 고찰해 보자.
(1) 죄를 지은 자들은 "죄에서 돌이켜야만" 한다.
샛길로 나간 자들은 "돌아와야만" 한다.
처음 사랑을 버린 자들은 처음 행실을 행해야만 한다.
(2) 은혜를 통하여 죄에서 돌이킨 자들은 자기의 형제들이 굳게 서서
떨어지지 않게 되도록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 참조 (시 51:11-13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12)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13)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
딤전 1: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4. 베드로는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그리스도를 놓치지 않겠다고 장담하였다.
(33절 그가 말하되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이 말은 참으로 위대한 말이었다.
당시 그가 의미했던 뜻과 어떻게 하든 "잘해 보려"는 생각 외에 달리 생각할 수는 없다.
유다는 종종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부인하리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베드로처럼 이렇게 완강히 항의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베드로의 마음은 악한 것에 대하여 거부하고 있었지만
유다는 완전히 악한 것에 마음을 쏟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정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따라 그가 어느 곳으로 가든지",
또 그가 어느 곳으로 그들을 인도하든지,
감옥으로든, 죽으로든 따라 갈 준비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5.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그를 부인할 것을 예언하신다.
(34절 이르시되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시니라).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너는 네 자신의 마음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당분간이나마 네게 맡기는 것은 네가 네 마음을 알게 되어
다시는 네 마음을 신뢰하지 말기를 바람이다),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보다 더 우리를 잘 아시며,
우리 안에 있는 악한 것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들에 의해 나타나게 되리라는 사실도 잘 알고 계심을 명심하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도 우리의 약한 점을 더 잘 아셔서
충만한 은혜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은
우리로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시험에 들게 될 것인가를 아시고
"이 정도까지 될 것인데 그 이상은 안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시니 다행스런 일이다.
Ⅳ. 모든 제자들의 준비 사항.
1. 그는 제자들에게 과거의 형편에 대하여 물으셨다.
(35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전대와 배낭과 신발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이르되 없었나이다).
그는 제자들이 그에게 충성된 종의 역할을 다하였다고 인정하셨다.
(28절 너희는 나의 모든 시험 중에 항상 나와 함께 한 자들인즉).
이제 그들과 헤어지면서 그리스도는 그들에게 과연 그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그를 따른 이후 그들의 친절하고 다정한 주인이 되었는지 알고자 하신다.
"내가 너희를 전대와 주머니와 신도 없이 보내었을 때에 부족한 것이 있더냐?"
(1) 그는 제자들을 보낼 때 맨발로,
전대에는 돈도 없는 대단히 궁핍하고 어려운 형편으로 보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먼 곳으로 가거나 오래 동안 나가 있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함으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만을 의존하고
그 섭리 안에서 그들의 친구들의 도움에만 의존하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형편으로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우리는 우리가 시작했던 보잘 것 없는 형편에서
더 나아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족한 것이 없었음"을 인정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그때도 그들은 여전히 풍족하게, 평안하게 살았으며,
그들도 그것을 기꺼이 인정하도록 해 주실 것이다.
"없었나이다. 부족한 것 없이 풍족하였나이다".
다음 사실들을 명심하자.
[1] 우리도 때때로 우리의 지나온 생애를 돌아보며
우리에게 내려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재고해 보며,
우리가 당했던 고난과 시련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는가
생각해 보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2] 그리스도는 선한 주인이시며 그의 보살핌은 부족함 없는 보살핌이다.
그의 종들이 때로는 낮은 곳으로 끌어내려 갈지라도 그를 도울 것이며,
그들을 "시험"할지라도 그들을 버리시지 않으실 것이다.
"여호와 이레"이다.
[3] 우리에게 충분한 양식의 여유가 없을지라도,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살 처지라 할지라도,
다른 친구들의 도움으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우리에게 일용한 재물만 있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불평하기보다는 감사해야 한다.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헌물에 의존해 살았으나 자신들의 형편이
말도 못할 정도라고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님께 감사드리며
풍족했노라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2. 그는 제자들에게 이제부터 다가올 그들의 형편의 대변화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
(1) 왜냐하면 그들의 주님되신 그리스도는 전에도 누차 말한바와 같이
이제부터 수난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37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기록된 바 그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져 감이니라).
"기록된 바 저는 불법자의 동류로 여김을 받았다 한 말이 내게 이루어져야 하리니 내게 관한 일이 이루어감이니라. 그리고 이 일은 남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도 이루어지리라. 그는 범죄자로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리라. 또한 흉악한 범죄자들과 함께 죽으리라. 이 일은 아직 이루지 못한 일로써 이 일이 이루어짐으로 내게 관한 일이, 내게 관하여 기록된 일들이 끝을 맺으리라. 그때에 나는 다 이루었다고 말하리라."
고난받는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고난받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도
그들의 고난이 예언된 것으로 하늘의 섭리에 이미 "결정되어 있는" 사실을
잠시 후 하늘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마련되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통해 위로를 받게 된다.
그들의 고통은 그들에 관하여 "기록된" 것이며,
"끝을 맺게 될" 것이며, 유종의 미를 거두어 영원히 남게 되리라.
(2) 그러므로 그들은 고난을 예상하고 지금까지와 같이
편하고 즐거운 생활을 계속하리라는 생각을 버려야만 하였다.
그게 아니라, 이제는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지금은 그들의 선생과 "함께" 있으면서 약간의 고난을 받으나,
그가 가면 그들도 선생과 "같은" 고난을 받을 예상을 하고 있어야만 되었다.
종이 그 주인보다 낫지 못한 것이다.
[1] 친구들이 예전처럼 그들을 그렇게 친절하고 관대하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그러므로 "전대있는 자는 가질 것이다." 왜냐하면 전대가 필요한 경우가 있을 것이며
될 수 있는 한 검약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그들의 적들이 이제는 전보다 더 지독하게 그들을 못살게 굴 것을 예상해야 한다.
쌀뿐만 아니라 되도 필요할 것이다. 강도와 자객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고후 11: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검이 없는 자"는 검이 대단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 것이며
언제라도 자기 옷을 팔아 검을 살 준비를 하게 될 것이다.
이 말은 단지 누구나 옆에 검을 지니고 다니지 않으면
목숨을 지키기 힘든 대단히 위험스런 시기가 올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지녀야 할 검은 "성령의 검"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아야" 한다.
(벧전 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우리는 다가올 고난을 예비하여 "갑옷을 입고" 고난이 닥치더라도 놀라지 말며,
고난 중에 배척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우리의 겉옷을 팔아 검을 사는 것보다
더 안전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에 제자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어떤 것인가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들은 "검 둘"을 발견하였다.
그 중 하나는 베드로의 것이었다.
갈릴리 사람들은 평소에도 검을 가지고 다닌다.
그리스도는 검을 가지고 다니지 않으셨지만
그의 제자들이 검을 지니고 다니는 것을 금하시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가 "족하다"고 말씀하셨을 때에 우리는
그가 검에 의존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주석가는 이 말씀을 냉소적인 말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열둘 중에 검이 두 개 뿐이라!
너희 적들은 지금 수없이 몰려오는데,
그것도 한 사람이 검 하나씩 들고 달려오는데 고작 이것이라니,
참으로 대담무쌍하구나".
그러나 검이 필요없는 자들에겐 두 개라도 족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손수 "그들은 돕는 방패시오 그들의 영광의 칼"이시기 때문이다.
(신 33:29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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