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17일 화요일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백성들의 불평

: [ 17:1-3]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광야에서 떠나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 17:1]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광야에서 떠나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

광야에서 떠나 - 백성들이 이상 광양에 머물지 않고 그곳을 떠난 이유는 그곳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 군사적으로 영원한 안식처가 되기에는 미흡한 탓도 있었겠으나 근본적으로는 그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들의 최종 목적지인 가나안을 향해 행진하여야 했다.

( 13:14-15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눈을 들어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한편 이스라엘의 이와 같은 계속적인 광야 여행은 신약 시대 그리스도인들의 천국을 향한 끊임없는 나그네 생활을 예표 한다.

노정대로 행하여 - 여기에서 노정(路程)이란 광야로부터 돕가와 알루스를 거쳐 르비딤에 이르는 길을 말한다.

( 33:12-14 광야에서 발행하여
13) 돕가에 쳤고 돕가에서 발행하여 알루스에 쳤고
14) 알루스에서 발행하여 르비딤에 쳤는데 거기는 백성의 마실 물이 없었더라).

르비딤 - '원기 회복'이란 뜻이다.

시내 산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하였던 것만은 분명하나 정확한 위치는 없다.

(6 내가 거기서 호렙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 모세가 이스라엘 장로들의 목전에서 그대로 행하니라)

혹자는 시내산 서북쪽 20Km 지점에 있는 오늘날의 '와디 페이란'지역은 여러 개의 샘과 개울이 있어 물이 넉넉한 곳이었으나, 이때에는 분명 가뭄 등으로 샘과 개울이 말라 물이 고갈된 듯하다. (L. Wood, Stanley).



[ 17:2]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가로되 우리에게 물을 주어 마시게 하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나와 다투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 이스라엘 백성들의 파렴치한 행동을 다시 한번 보여 준다.

이들은 모세를 단지 원망만 하던 과거의 정도를 넘어

(14:12-13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애굽 사람을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15: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16:2-3 이스라엘 회중이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제는 모세와 다투기까지 했으며, 모세에게 직접 물을 달라고 항의하였다.

백성들의 이와 같은 행위는 사실 배은망덕한 행위로서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로 하여금 곤경에 처하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이들의 행동은 전혀 자주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들의 정당한 행동으로 수가 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에 부딪칠지라도 공동의 노력을 기울여 난관을 극복하려 최선을 다해 그래도 경우 하나님께 호소하여야 도리인데, 어려운 일에 봉착할 때마다 무턱대고 지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원망한 것은 미성숙하고 이기주의적인 인격을 드러낸 것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시험하느냐 -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모세를 원망하는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과거에도 알았었다.

(16:7-8 아침에는 너희가 여호와의 영광을 보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가 자기를 향하여 원망함을 들으셨음이라 우리가 누구관대 너희가 우리를 대하여 원망하느냐
8)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저녁에는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이시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불리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자기를 향하여 너희의 원망하는 말을 들으셨음이니라 우리가 누구냐 너희의 원망은 우리를 향하여 함이 아니요 여호와를 향하여 함이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시 모세와 다툼으로 하나님을 시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임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신적 권위를 업신여겼으며, 따라서 항상 그들을 인도하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를 의심하고 불신하였던 것이다.



[ 17:3] 거기서 백성이 물에 갈하매 그들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우리와 우리 자녀와 우리 생축으로 목말라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어서 -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예근성과 역사의식의 결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말이다. 동시에 본절은 그들이 아직도 하나님 존재와 구원 행위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진정 이들은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통하여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분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목도했었다.

(16:6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저녁이 되면 너희가 여호와께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을 것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목이 마르고 물을 마실 없게 되자 현실의 모든 책임을 모세에게 돌려 그를 모든 불행의 원흉인양 원망하고 불평함으로써 자신들의 영적 무지와 마음의 완악함을 여지없이 드러내었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적으로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 자유와 독립은 커녕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맺을 선택된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전혀 없음을 실감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오직 무한한 당신의 사랑으로 이처럼 부족한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셨는바,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그보다 부족한 우리 역시 영원한 하늘나라의 시민으로 삼아주신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따라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하여 일평생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것이다.

목말라 죽게 하느냐 - 마라의 사건(15:22-26) 이어 물로 인한 번째 원망이 나타나고 있다.

(15:22-26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어려운 상황에 봉착할 때마다 항상 죽을 것으로 생각하여 모세를 원망하였다.

(14:11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6: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러한 백성들의 두려움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 솨다이- 17:1)으로 인식하지 못한 불신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 17:1 아브람의 구십구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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