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7일 토요일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하나님의 모세의 노래


출애굽기 15

이스라엘은 궁경(窮境)에서 구출되었다.

삼면이 막히고(폐쇄되고), 후방의 일로로 우세한 적은 다가와, 진퇴 어찌할 없어진 , 동풍이 불어, 해수를 갈라놓아, 이스라엘은 무사히 피안에 상륙하고, 애굽인은 도중에 해수로 인하여 복물 전멸되었다.

그때 이스라엘의 입에서 찬미의 노래가 터져 나왔다. 이는 아마도 찬미가(찬송가) 중의 최초의 , 또는 모범인 것이고, 가장 경탄할 노래이다.

신약성서에는 이것을 하나님의 모세의 노래(계시록 15:3-)라고 말하고 있다. 생각건대 가장 적당한 명칭이다.


하나님의 모세의 노래는, 대체로 다음과 같이 노래된 것이리라.

회중은 남녀의 2대로 나뉘어, 남자대의 저음에 대하여, 미리암에게 인도된 여자대의 고음이 화답되었으리라.

나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라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1-)

전편-회고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나의 노래로다 그는 구원이 되셨도다 그는 하나님이시라, 나는 그를 찬송하리라(2-)

여호와는 용사(군장)이시라 이름은 실로 여호와시로다(3-)

바로의 병거와 군대를 그는 바다에 던져 버리셨도다 탁월한 두목(장관)들은 홍해에 잠겨버렸다(4-)

물은 그들을 뒤덮어 버렸다 그들은 돌처럼 깊음 속으로 내려갔도다(5-)



백성들아(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고 찬송하라 여성의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소리로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져버리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은 능력으로써 영광을 나타내시나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은 원수를 부수시나이다(6-)

주는 위엄(영광)으로써 주를 거슬리는 자를 멸하시나이다 주께서 진노를 발하시면 그들은 초개같이 불사른바 되나이다(7-)

주의 콧김에 의해 물이 쌓인바 되었나이다 파도는 굳게 서서 언덕같이 되었나이다(8-)
큰물은 바다 가운데서 엉겼나이다


백성들아(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고 찬송하라 여성의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소리로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져버리셨도다 대적(원수) 말했나이다. 내가 추격하리라, 내가 추격하여 잡으리라,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마음을(흡족히) 채우리라 내가 칼을 빼리라, 손으로 그들을 멸하리라고(9-)

(그러나) 주께서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었도다 그들은 밑에 납처럼 잠겼나이다(10-)


백성들아(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고 찬송하라 여성의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소리로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져버리셨도다 여호와여, 신중에 누가 주와 같은 있으리이까 누가 주와 같이 거룩하고 영광스러우리이까 찬송할만하고 두려워 만하며 이적을 행하는 있으리이까(11-)

주께서 오른손을 펴셨나이다 그리하여 땅은 그들을 삼켰나이다(12-)


백성들아(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고 찬송하라 여성의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소리로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져버리셨도다


후편-예언

주는 은혜로써 구속하신 백성을 인도하시고 주의 능력으로써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까지 데려가시나이다(13-)

백성들아(열방들아) 듣고 떨지어다 블레셋 백성은 두려움을 가지고(14-)

에돔 방백은 놀라며 모압의 강자(영웅) 치를 떨고 가나안 백성들은 사라져 없어지도다(15-)
두려움과 놀람이 그들에게 비치도다 주의 팔이 큼을 인하여 그들이 돌같이 고요하도다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지나기까지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16-)

주는 그들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산업)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로 삼으시려고 주께서 예비하신 곳이니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니이다(17-)

여호와는 영원 무궁토록 다스릴 것이오니이다 백성들아(너희는) 여호와를 노래하고 찬송하라 여성의 그는 높고 높은데 계시는도다 소리로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져 버리셨도다
* (이상은 일본역이고, 한글역이 아님을 염두에 두기 바람.)


이것을 히브리의 간결 장중한 말로서 노래한 , 얼마나 장대한 노래였을지를 추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찬미 소리가 터져 나온 것은, 경우로 보아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이때, 이스라엘이 취해야 길은, 다만 있을 뿐이었다.

쫓겨서 궁경에 빠진 쥐가 도리어 고양이를 , 이스라엘도 또한 궁박한 끝에 70만의 총세를 모두어, 손에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서 다가오는 적과 싸우던가,

혹은 모세 자신, 혹은 아론이나, 여호수아 , 수령 중의 한둘을 바로에게 보내어, 모종의 조건 아래 타협을 시도하여, 다시 애굽땅으로 귀환하든가,

전쟁이든가, 아니면 외교든가. 그렇지만 모세에게 있어서는, 가지는 모두 못할 (불능)이었다. 여기서 만일의 요행을 기하여, 싸우는 것은, 애당초 일이 아니다.

(그리고 ) 한번 버린 바로와 손을 잡는 것은 더욱 그릇된 일이다. 단순히 주의의 (관철이라는) 문제로서도, 이는 그가 차마 없는 일이었다.

여기서 모세가 택할 길은 최후의 (일도)이었다.
그는 다만 기도해야 것이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원조에 의해 이스라엘 민중이, 궁경에서 구출될 있는 이적 보기를 기도해야 것이었다. 그리고 모세는 길을 택했다.

그는 기도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도를 들어 주셨다.

하나님은 해수를 갈라, 길을 열어 주심으로써, 이스라엘 민중은 모두다 무사히 건넜다. 추격해온 애굽 군대는, 모두 익사했다. 구원은 완전히 실현되었다.

놀라운 은혜를 실험(체험) , 찬미의 소리는 충심에서 솟아오지 않을 없다. 스스로 싸워서 이긴 , 혹은 외교의 책략을 써서 성공한 , 승부는 있대도, 찬미는 없다.

그리스도인의 찬미가(찬송가), 인력이 다하여 기진해지고, 다만 하나님의 손에만 의지함으로써 길이 열려, 특별한 은혜를 실험한 때에, 비로소 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진정한 찬미가(찬송가)이다.

진정한 찬미가가, 이렇게 하여 나오는 것임은, 모세의 실험에 유사한 실험(체험) 가진 모두 아는 바이다.

그리스도인은, 궁경에 빠져, 적과 상대하는 , 자기의 힘을 믿고서 싸울 없고, 그렇다고 물론 세상과 타협할 없으며 그는 다만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도 모르고, 적도 또한 모르는 의외의 길이 열려, 교묘히 구출되는 것이다. 그때, 전신은 용약하여, 저도 모르게 찬미의 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찬미가 중에는, 하나님의 능력을 송축 찬양하는 감사가 있다. 장래에도, 반드시 구원되리라는 희망, 일종의 예언이 있다. 신앙상의 모든 원칙이 그중에 넣어지는 것이다.

모세의 찬미가의 가장 현저한 특징은, 마디도 자기에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철두철미, 하나님만을 찬미한 것이다.

이리저리 했습니다 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용기 인내로 구원되었다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모든 영광을 오직 여호와께 돌리고 있는 것이다.

근래(근시) 구주(歐洲)대전(세계대전 참조) 승리를 얻은 자가, 가끔 찬미 소리를 말함을 듣건대, 거의는 자기 찬미이다. 하나님의 이름은, 자기의 공업을 꾸미는(장식하는) 일종의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 모세와 동시대의 애굽 또는 바벨론의 왕들이 신전에 새겨놓은 글들을 보면, 모두 찬미와 함께 자기 찬미이다.

이렇게 했다고 하는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찬미 같은 , 일례이다.

그런데 모세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전적으로 자기를 무시했다. 그는 다만 노래하여 말했다.

나는 여호와를 찬양하리라 그는 높고 높은 계시는도다라고.

그는 말과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라고.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라.

그는 나의 구원,
그는 하나님,
그를 찬송하리라,
그를 (높이) 송축하리라,

그는’ ‘그는이다.
그를’ ‘그를이다.

전부가 여호와이다.

자기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 행사가 아니다.

자기 다만 기도할 . 전부를 성취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찬송할 이는 오직 이다 라고.
이는 실로 하나님께 의지(신뢰)하는 자의 실험(체험)이다. 그것은 개인이냐 국민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누구인가가 말했다. 무저항주의는 국가로서는 아직 번도 시도된 일이 없다고. 이스라엘은 실로 이것을 실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와 외에 찬송할 이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승리를 자기의 힘에 돌리지 않았다.

근세의 국가는 먼저 자기의 육해군을 찬미하고, 그런 후에 하나님을 찬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근래(근시) 이르러, 영미의 극히 소수인 사이에, 예전의 신앙이 부흥하고 있다. 이제 일단 국가를 전연 하나님께 맡기려는 신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날, 미국에 있어서 군비확장의 소리가 떠들썩하고, 시위운동을 위한 행렬이 행해졌다. 대통령을 비롯하여, 조야의 명사가 모두 거사에 참가하고, 이에 참여하지 않는 것을 애국심의 결핍을 들어내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때에 있어서, 사람이, 공공연하게 이에 반대하여, 행렬의 참여를 준거(峻拒) 이가 있었다. 그는 뉴욕(New York) 유니온 신학교 (Union Theological Seminary) 교수 모씨와 성공회의 감독 모씨였다. 감독은 말했다.

나는 아마도 때문에 내직을 잃으리라. 배하(followers) 40명의 교직과 다수의 시민은 나를 공격하고 있다. 그렇지만 나로서 만약 행렬에 참가할 것인가, 신앙은 그때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미국의 군비확장의 주지가 나변에 있는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 이들 사람 같은 이는, 말하는 것이다.

일본이여 울려면 오라, 우리들은 나라를 하나님께 맡긴다고. 그리고 일본에게 있어서 두려워해야 것은, 실로 군비 확장론자가 아니라, 이를 소수의 무저항주의자이다.

이러한 신자가 존재하는 , 정예의 군대도, 결코 의뢰할 못된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어, 만의 비휴, 몽동을 태평양 바다 속에 던지지 않으리라 보장할 없는 일이다.

개인으로서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바다와 산은, 전도좌우를 막고, 뒤를 돌아다보면, 우세한 적이 다가오는 일등, 궁경에 서는 일이 반드시라고 있을 정도로 적지 않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난국을 벗어날 것인가?

신앙 없는 자는 마침내 적에게 항복하는 것밖에 알지 못한다. 세인도 또한 동정하여 말한다. 그런 곤란한 지경(경우) 빠져가지고서는, 자신도 한가지로 패했으리라고.

그렇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인력이 미치지 않는 궁경도, 역시 하나님의 지배 안에 있음을 알고 있다.
그는 천지를 주장하시는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아지 못하는데) 길을 여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다만 기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놀라운 길을 여시는 것이다. 의외(생각 ) 방법에 의해 궁경에서 구출하시는 것이다. 그때 그는 자기의 자랑(자찬) 이유를 알지 못한다. 타인을 찬양해야 까닭을 모른다.
하나님을 제외하고서, 찬미를 돌려야 데를 그는 아직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만 ()’ ‘라고 하여, 하나님만을 고조하는 것이다.

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9-)

이미 차지한 것이다. 이미 수중의 것이다라고 대적은 말하는 것이다. 이는 통절한 실험(체험) 말이다.

세상의 세력 있는 부호, 또는 귀헌(1 271, 283p 참조) 같은 이들도 때로 이렇게 말하고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바라는 무슨 일이든, 금전 또는 위력에 의해, 성취할 있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 사람의 약자가 일어나 권리를 주장하고, 정의를 절규하는 있대도, 마치 개미처럼 멸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앙의 입장에서 하면, 하나님 이외에 무서워 것은 없는 것이다.

애굽의 세력 도대체 무엇이랴!

주께서 주의 바람을 일으키시매 바다가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흉융한 물에 납같이 잠겼나이다(10-)

부호 무언가? 귀현 무언가? 하나님의 입김(일기식), 그를 멸하리라.

전절의 호언(호언장담) 서로 비교하여, 대조의 묘를 남김없이 다하고, 문학상에서 말한대도, 절륜(초우열 peerless) 대문장이다.

신앙의 위대는, 여기에 있다.
신앙이란, 단순히 마음의 순화는 아니다. 신앙은 세력을 무서워하지 않는 일이다.

근세의 교육은, 함부로 힘의 무서워 바를 고취한다.

그러나 신앙은 세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앞에, 대가 무너지는 (도피하는 ), 이것이 신앙의 위대이다.

교회에 책임관(고관) 오는 것으로써 자랑삼고, 세상의 세력과 서로 결합하는 것을 가지고서, 전도의 진보로 보는 우리나라 오늘날의 종교계에 있어서, (무엇보다) 신앙의 위대함(greatness) 고창하는 것이 실로 현하(지금) 급무인 것이다.

모세의 노래는 이것을 둘로 나눌 수가 있다.

1절에서 12(까지) 회고이다. 감사이다.

13절에서 18(까지) 예언이다. 희망이다.

하나님은 이미 이렇게까지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끝까지 반드시 은혜를 베푸시리라고. 모든 참된 찬미가(찬송가) 가지 요소를 포함하지 않을 없다.

은혜는 하나로 그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은혜가 임하는 때는, 반드시 눈을 들어, 전도에 가로 놓인 보다 은혜를 바라는 것이다.

회고와 예언은 참된 찬미가의 특징이다.

모세는 오랫동안 미디안 땅에 있었기 때문에, 황야(광야) 지리에 정통해 있었다. 그는 사막의 여로의 전도에, 강적이 적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블레셋과 에돔과 모압과, 그리고 후에 가나안이다. 전도(前途) 아직 요원이다. 목표하는 거룩한 거처(성지) 이르기까지는, 허다한 적지를 통과하지 않으면 된다. 곤란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인 것이었다.

그렇지만 홍해 횡단의 귀한 실험(경험) 그로 하여금 희망을 갖게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는 이미 여호와께서 어떻게 하여 애굽인을 심판하셨는지를 실지로 보았다.

여호와께서는 가지로, 또한 블레셋, 에돔, 모압도 심판하심에 틀림이 없다. 그리하여 우리를 거룩한 가나안 땅까지 인도하심에 틀림없다고. 이에 있어서 그는 소리 높여 노래했다.

주께서 구속하신 백성을 은혜로 인도하시되 주의 힘으로 그들을 주의 성결한 처소에 들어가게 하시나이다(13-)라고.

그리고 이는 신자 각자의 실험(체험)이다.

거룩한 처소(성지), 우리들의 천국이다.

우리의 생애가 계속되는 , 우리들이 현세에서 방황하는 , 하나님은 반드시 구속한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그리하여 드디어 거룩한 천국에까지 데려가시는 것이다.

천국의 희망, 이는 신자의 홍해 횡단의 실험(경험) (통한) 은사이다. 신앙의 보수이다.

천국 존재의 증거를 보이라고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과 가지로 불가능이다.

그렇지만 모세의 신앙을 가지고서 일단 홍해를 건넌 자는, 천국을 바라지 않을 없는 것이다.

천국은 논증의 문제는 아니다. 실험의 문제이다. 신앙의 실험(체험)에서 절로 천국의 희망은 용솟음쳐 나오는 것이다.

실로 이것은 위대한 찬미가이다. 하나님의 묵시에 의해 지어진 찬미가이다. 학자 어떤 이는 이것을 후세의 작이라고 한다. 그러나 모세가 아니고서, 이러한 실험(체험) 이가 있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는 실로 모세의 작이다.

모세가 음악을 해득했다는 것이 아니다. 악기 같은 것은, 매우 조잡한 것이었으리라.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앙의 실험은, 그러한 장대한 노래를 그의 입에 용솟음치게 했던 것이다.

더구나 이것을 노래한 이는, 수십만의 회중이었다. 아니, 국민 전체였다. 구원된 백성이 마음속에서 소리 내어 합창했던 것이다.

사가(史家) 말한다. 국민(nation) 발생은, 이스라엘의 홍해 횡단에서 시작된다고. 그리고 참된 찬미가의 발생도, 이에 있었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오라트리오(oratrio 대규모적 종교합창곡; 성탄곡) 시작이었다.

구원의 실험(경험) 거친 자는, 반드시 독특한 찬미가를 가진다.

일본의 신자도, 만약 이스라엘에 흡사한 실험(경험) 가졌다면, 일본 특유의 찬미가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본인의 노래를 일본인의 악보를 가지고서, 일본인의 악기에 의해 합창하는 날이, 조만간 것이다. 악기의 조잡함을 걱정할 없다. 애굽의 악기에 의해, 하나님의 모세의 노래는 찬가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셨다는 실험(체험) 용약하는 자는, 국민의 구원, 만민의 구증을 원해, 위대한 찬미 소리를 것이다. 이는 결국 음악 그것의 구원이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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