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3월 8일 일요일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마라의 물과 엘림의 종려


출애굽기 15 22-27 모세가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매 그들이 나와서 수르 광야로 들어가서 거기서 사흘길을 행하였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23) 마라에 이르렀더니 물이 써서 마시지 못하겠으므로 이름을 마라라 하였더라
24) 백성이 모세를 대하여 원망하여 가로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25)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거기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법도와 율례를 정하시고 그들을 시험하실새
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27)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물샘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곁에 장막을 치니라.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기이하신 구원에 의해, 무사히 홍해를 횡단했다.

그들은 소리를 맞추어, 찬미의 노래를 불렀다. 그들은 이미 애굽을 나온 것이다. 이제부터 안전한 여로는, 그들 앞에 열려, 드디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이를 있게 되리라는 것은, 필경 그들 다수자의 기대였으리라.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의 전도(前導) 아직 요원한 사막이었다. 에담의 광야(황야) 걷기 사흘로서, 그들은 없음으로 고생했다. 드디어 마라에 이르러 물을 발견했으나, 그것은 써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실망했다. 그들은 앞서 위대한 찬미가를 부른 입술로써, 다시 원망(불평)하기 시작했다.

원망은 자주 그들이 되풀이하는 일이다.

비하히롯에서 진퇴가 곤란하게 되었다고 해서 원망하고, 마라에서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14:11-12 그들이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이같이 우리에게 하느뇨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고한 말이 이것이 아니뇨 이르기를 우리를 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뇨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후에 광야(황야)에서 먹을 (음식물) 없다고 원망하려 드는 것이다.

그들은 실로 불평(원망) 백성들이다.

그렇지만 이는 하나님께 인도되는 백성의 실험(체험)이다.

신자가 하나님의 인도하심 따라 죄의 세상을 떠나, 새로운 나라로 나오자마자, 먼저 맛보지 않으면 되는 것은, 마라의 물의 쓴맛(고미)이다.

그들도 옛날 이스라엘인과 한가지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미 우리는 죄의 세상을 나온 것이다. 구원의 생애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부터 후에는 다만 은혜만으로서, 물도 많고, 음식물도 풍성하리라.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
물의 부족은 그들을 괴롭히는 것이다. 겨우 이것을 발견하고 보면, 쓴맛 때문에 마실 없는 것이다.

혹은 수입의 부족이다.
혹은 구우의 이반이다.
혹은 질병이다.
혹은 불행이다.

애굽을 나온 , 결코 가나안에 이를 있는 것은 아니다. 쓸쓸한 황야의 생애는, 반드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데 있어서의 필연의 경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도 또한 자칫하면, 불평 원망의 소리를 발하여, 애굽의 노예생활을 회고하려 한다.

이스라엘의 경험은, 역시 모든 신자의 경험이다.

백성들은 그처럼 모세에게 향하여, 원망했다.

그렇지만 여호와를 신뢰하는 모세는, 실망하지 않았다.
그는 해오던 대로, 여호와께 호소했다. 여호와께서는 이에 나무를 지시해 주시고, (모세는) 이것을 물에 던지니, 물은 달아져, 마실 있게 되었다.

나무란 무엇이었던가? 그것을 찾고자하여 근세의 여행가는 시내 곳곳을 수색했지만도, 종내 종류의 식물에 봉착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시내 산중, 종류의 식물의 유무가 아니다. 물을 달게 것은, 나뭇가지는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능력이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물속에 넣으라고 명하시고, 따라 하니, 물이 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 그것이 이적의 원인이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다시 가르쳐 말씀하신 것이다.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여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26)

우리에게도 가끔 실험(경험)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시에 이것을 달게 하는 길을 예비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나무를 물에 던지면, 반드시 달게 되어 마실 있는 것으로 되는 것이다.

나무란 무엇인가?

신자는, 자기 경험상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것을 마실 있는 것이 되게끔 하시고, 특별히 맛있는 것이 되게끔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이는 복음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이다.

이것을 가지고서 그가 마실 없는 물이란 없다. 세상의 어떠한 쓴맛(고미)이라 할지라도, 올려 거든 오라, 신자의 손에는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나무가 있다.

그는 이것을 가지고서 모든 간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 사람이 견딜 없는 것에, 견디어 내는 것이다. 아니, 다만 이에 견딜 뿐만이 아니다. 이것을 화하여, 감로의 맛이 되게 하는 것이다.

풍성한 하늘의 은혜는, 메마른 땅의 소산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황야의 여로의 (종말) 이른(가까이 다다른) 신자는, 모두 말한다.

나의 생애에도 허다한 (사건)들이 있었다. 허다한 간난이 임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이것을 달게 하는 것이 주어졌다. 광야(황야) 여로, 돌이켜보면 다만 감사 있을 이라고.

생각건대 간난은, 대체로 누구에게나 거의 비슷하게 임하는 것이다. 문제는 다만 이것을 채로 마시는가, 달게하여 마시는가에 있는 것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자를 잃을 , 누구 나가 견딜 없는 비통으로 가슴 치지 않을 없다. 그때, 친구는 와서 깊은 동정으로써, 나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가 위로할 있는 것은, 비통의 겨우 분의 일이다. 분의 구십구까지는, 자신이 스스로 이것을 처치하지 않으면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하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이르는 희망으로써, 우리를 위로하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우리에게 (능력) 주신다. 신앙의 생애에는, 신앙을 가지고서 모든 경우(환경) 응할 있도록 예비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날이 차츰 자오선을 지날 무렵, 전반 일의 생애를 회고하여 감사에 넘치고, 이제 한번 그러한 생애를 되풀이하는 것도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신앙의 생애는 광야(황야) 생이다.

마라의 물은 때때로 신자를 괴롭힌다. 그러나 신앙의 생애는 결코 그저 것만은 아니다.

그들이 엘림에 이르니 거기 열둘과 종려 칠십 주가 있는지라 거기서 그들이 곁에 장막을 치니라(15:27-)이는 신자의 실험(체험)이다.

맑은 (청수) 말하는 우물 12,
신선(시원) 진진한 종려 70,

여기에 천막(장막) 치고서, 잠시의 휴양을 마음껏 가질 , 기쁨이란 다함없는 데가 있다.

그때, 종려나무 아래서 휴식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살펴 헤아릴 없는 ()) 있다. 신앙을 가지로 하는 이들이 서로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 크리스마스의 기쁨을 나눌 , 모두 이것이다.

신앙의 생애에 고생이 있다.
기쁨이 있다.
마라의 물이 있다.
엘림의 종려가 있다.
그리고 마라의 물에는 그것에 곁들여(함께), 이것을 달게 하기 위한 나무가 갖추어져(예비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생도 또한 기쁨으로 변할 있는 것이다. 광야(황야) 여로, 이는 감사의 연속이다.

시내반도는, 넓이() 200마일, 길이() 225마일에 이르는 삼각형이 대반도인데, 지금은 거의 황폐해져, 아무 소용도 없이 되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여기서 마라의 물과 엘림의 종려와 (광야) 만나를 맛보게 하시기 위해 시내의 대반도를 지으셨다고 해도, 결코 무익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구주(Europe) 왕래의 ()중에서 석양에 비치는 시내 산을 멀리 바라보면, 웅대한 경치가, 무언중에 사람의 마음을 누른다고 한다. 여기서 이스라엘은, 40년을 보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준비를 다한 것이다. (내촌감삼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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