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8일 토요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십계명 1


출애굽기 20 3

너는 앞에(안전에) 외에 아무 것도 신으로 하지 말라 - 일역

(너는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 한글역 개역)


앞에서 어떻게 해석 해야 할까?

어떤 이는 말한다.
한마디에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 국어에도 이런 종류의 첨부어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앞에(안전에)라고 하시는 , 이것을 없는 것이랄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앞에 나가는 때는, 그의 안전(案前)에서는 때이다.

그러므로

앞에 외에 아무 것도 신으로 하지 말라 하면,
나를 제쳐놓고 달리 아무 것도라는 사이에는, 다소의 차이가 없을 없다.

마치 내가 단상에서 말하는 ,

앞에 누구도 서지 말라 하면, 그저 나를 제쳐놓고 누구도라고 하는 것과, 약간 의의를 달리함과 같은 일이다.

앞에, 나와 청중 제군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는 것으로, 기타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이 여기에 서건 서건을 묻지 않는 것이다.

그처럼

너는 앞에서 외에 아무 것도라고 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함이다.

다른 국민이 어떤 신을 가지던, 잠시 이를 묻지 않는 것이다.
당시 어느 나라에건 신이 있었다.

모압에는 그모스 있었고,
애굽에는 라가 있고,
앗시리아(앗수르)에는 앗슈르가 있고,
바벨론에는 벨이 있고,
피니시아에는 마르커스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것이 과연 신이냐 아니냐는 잠시 이를 불문에 붙여 두고서, 다만 너희들 이스라엘이 앞에 서는 때는 외에 아무 것도, 신으로 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가르침을 받은 이스라엘인이, 모압인의 집에 이른 때는, 너희 신은 신이 아니라 하지 않았다.

다만 우리들의 하나님은 여호와시라. 우리들은 여호와 앞에서 다른 무엇도 섬기지 않는다 선언했던 것이다.

종교학상의 소위 Monolatry(배일신교)였고, Monotheism (유일신교) 아니었다.

사상이 결국에는, 여호와만이 참신이고, 외에는 신이 없다는 유일신교로 귀착될 것은 물론이다.

그러므로 예레미야, 다니엘 예언자(선지자), 모두 이것을 고조하여,

하나님은 오직 여호와 , 기타의 신은 바람처럼, 있으나 없는 것이라 주장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모세는 어찌하여 처음부터 명백하게 이것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필경 유일신교 그것은, 당시 아직 민중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진리였기 때문에, 사상상 필연적으로, 이에 귀결될 배일신교로써 시작했으리라.

여호와 앞에서, 외에 아무 것도 신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여 이스라엘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우주에 있어서 유일하신 하나님으로서 섬기지 않을 없기에 이른 것이다.

현대인은 신의 유무에 대하여 논한다.
그러므로 그들 앞에, 사상은 반드시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모세시대에 있어서는, 이같이 중대한 문제는, 달리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누구나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없이, 각국 모두 다른 신을 믿었고, 중에서도 특히 세력을 세계에 떨치고 있던 애굽 또는 바벨론의 신이, 진정한 신으로서 존경되었었기 때문이다.

이때에 있어서, 마치 오늘날의 (Siam-지금의 태국 Thailand 구명), 또는 포르투갈(Portugal-스페인의 이웃에 있는 공화국) 같은 소국 이스라엘이 나타나,

우리가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유일신이시다. 기타의 신은 신이 아니다. 모두 헛되고 헛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주창한 것은, 실로 경이 제언이었다.

그런 경우에 있어서 이를 위해 얼마나 커다란 용기를 필요로 했었는지는, 우리들처럼 이교국에 있어서의 초대신자가 조금 상상할 있는 바이다.

국민 모두가 재래의 각종의 신을 신앙하는 때에 있어서, 사회상 아무 세력도 없는 하찮은 같은 자가,

우리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만이 참신이다. 다른 것은 모두 헛된 것임에 지나지 않는다 단언하는 것은, 무척 대담한 행위였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세의 제언은, 인류의 사상 상에 있어서의 진보 혁명이었다.

당시 어느 나라에건 모두 신이 있었다.

그리스(희랍)에는 그리스신,
피니시아(페니키아)에는 피니시아신,
애굽에는 애굽의 ,
앗수르에는 앗수르의 ,
기타 바벨론, 페르샤, 인도 중에도, 모두 특유의 신이 있었다.

애굽 연구의 대가 레누프(Renouf), 일찍이 애굽의 신신의 표를 편성하려 했지만도, 수가 너무나도 많아, 결국 단념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를 무수한 신신이, 모두 인류에게 향하여, 숭배를 요구하는 마당에 서서,

홀로 위인 모세가

이스라엘아, 너희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구출해 여호와 외에 아무 것도 신으로 하지 말라. (여호와)만이 우주에 있어서의 유일한 참신이다라고 외친 , 이스라엘은 실로, 일약하여 대사상에 접했던 것이다.

우리들을 지배하는 신은, 유일이시라고 한다.
이는 사상의 근본적 통일이나, 사상 분렬 , 사람에게 활동은 있으나마나이다.

우리들의 내심이, 혹은 이욕은, 혹은 명예, 혹은 공포로 인하여 분렬 당하고, 겨우 일부를 하나님께 맡김에 불과 하는 , 어느 쪽에 복종해야 할지를 몰라, 그저 주저하고, 망설이지 않을 없다.

그런데 참되신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그만이 우리들의 전심을 지배하며, 모든 것이 그에 의해 통일된다는 것을 믿기에 이르러, 비로소 참된 활동이 시작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본래 두뇌 명석한 국민이다. 중에서 선출된 모세는, 위대한 학자였다.

그는 당시의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던 애굽에 있어서, 우수한 교육을 받기 40, 후에 아라비아(1, 300p 참조) (광야) 물러가 양을 치기 40년이라고 하지만, 영재 그와 같은 이가, 과연 동안 황야(광야)에서만 방황했을 것일까!

어떤 이는 생각한다. 그는 바벨론으로 가서, 문명을 연구하고, 지식을 탐구했으리라고.
어쨌든 시대에 있어서, 획득할 있는, 모든 지식을 소유한 자는, 모세였다.

그리고 지금 사람에게서

여호와만이 우주에 있어서의 유일한 참신이고, 그밖에 하나도 신이란 없다. 애굽 또는 바벨론의 신은 신이 아니다. 우리들은 다만 여호와께만 복종할 것이다. 그가 자기의 존재의 중심이며, 사회국가 우주의 중심이라 사상을 전해들은 , 이스라엘은 영원한 진리에 접하고, 만국민보다 나은 국민이 것이다.

이래 역사는 변천에 변천을 거듭하고, 애굽, 바벨론 등의 제국 모두 넘어져, 신은 모두 장사되어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세계의 존경을 모아,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을 지배하는 것은, 삼천 삼백 년의 옛날, 위인 모세가 전한 여호와 하나님뿐이시다.

우주 유일의 하나님의 존재는, 실로 우리들 신앙의 근본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식의 근본이다

그렇다. 유일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것은, 다만 신앙의 근본이 될뿐더러, 지식의 본원이다.

과학도, 철학도, 이에 이르러 비로소 가능해진다.

옛날에는 60내지 70 원소를 인정한 화학은, 라디움 발견 이래 단일의 원소를 인정할 , 철학도 또한 다원론에서 이원론으로, 다시 일원론으로 귀착하여, 겨우 만족하기에 이른 것이다.

소위 절대자라, 실재자라고 하며, 본체 또는 실체라고 하여, 타자에 기대하는 일없이 영원한 존재를 가진 이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철학은 시작되지 않는 것이다.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한 학자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이시라(unity of God) 사상이다.

이것을 , 만물에 대한 과학적 흥미는 용솟음쳐 오른다.
이것을 , 모든 천연은 조화된 일대 음악으로 화하기에 이른다.

무엇이 유대인 중에서 세계적 학자를 배출했던가?
무슨 까닭으로 학문의 탐구는 그리스도교국에 있어서 왕성한가?

다름 아니다. (하나) 하나님 신앙이, 지식의 근저인 까닭이다.

여기서 안다. 일신론의 제창자 모세는, 신앙가임과 동시에, 철학자였음을.

다시 이것을 실제 문제에 있어서 것인가?
사상 있어서야 말로, 문명은 존재할 있는 것이다.

만약 오늘날 옛날처럼, 각국 모두 특이한 신을 섬긴다면, 국제 연맹, 또는 인도주의 등을 말하는 있대도, 누가 이에 응할 것이랴!

하나님은 (하나)이시다. 인류는 모두 유일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상 있어서, 비로소 인류 상호의 친밀한 관계를 낳는다.

하나님은 하나이신 까닭에, 인류는 모두 형제이다.
그러므로 서로 상쟁 아니다. 그러므로 상호의 최선을 도모하지 않으면 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자기처럼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된다고. 무릇 인류 사상의 귀한 것은, 모두 사상에서 생기는 것이다.

글래드스턴(1 9p 참조) 아르메니아(1 78p 참조)인이 학살의 보도에 접한 이는 우리 형제의 불행이 아닌가! 외치며, 영국 의회를 움직인 대의분(大義憤), 어디서 발했던 것인가?

이에 반하여, 우리 국민의 다수가, 인도의 기근의 참상을 듣고도, 냉연하여, 상관치 않는 풍조 있음은, 무슨 까닭에서인가?

불쌍히 여길 이국의 동포를 구하기 위해, 자기의 식물을 절약하고, 재물을 기울이기를 마다하지 않는 정신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상 없이는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시험 삼아 세계의 전도회에 가서 보라. 국내의 식자계급에 속하는 수천인이 서로 모여, 미개 국민을 위해 열도(열심신도) 드리며, 동지 건강과 교육에 있어서 가장 우수한 사람을 택하여,

너는 가서 아프리카 토인에게 복음을 전하라
너는 어디로…라고 하여, 그들을 멀리 파견하는 것이다.

열렬한 애타의 정신은, 천지만물의 신은 한분이시므로 만인은 형제라는 사상을 제쳐놓고, 달리 어디에서 것이랴!
 (내촌감삼의 글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