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영광과 백성들의 두려움
[십계명]
성 경: [출 20:18-21]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출 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 우뢰
- 자연 현상으로서의 천둥, 우뢰가 아닌 하나님의 강림으로 인한 특별한 그 우뢰임을 보여 준다.
성경에서 우뢰는 여러 상징적 의미를 지니는데
'하나님의 엄숙성',
'율법의 냉철함’
(19: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삼상 12:17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사
너희가 왕을
구한 일
곧 여호와의
목전에 범한
죄악이 큼을
너희로 밝히
알게 하시리라),
'하나님의 음성’
(시 104:7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여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등을 나타내거나 혹은 적에게는 멸망을,
하나님들의 자녀에게는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도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19:16 제 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삼하 22:14-15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뇌성을 발하시며
지존하신 자가
음성을 내심이여
15) 살을 날려
저희를 흩으시며
번개로 파하셨도다;
겔 1:13 또 생물의
모양은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서는 번개가
나며).
▶ 번개
- '빛나다'는 뜻의 '라파드'에서 파생된 명사로 '램프', '불꽃', '번개' 등의 뜻과
'하나님의 불’
(욥 1:16
그가 아직
말할 때에
또 한
사람이 와서
고하되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양과
종을 살라
버렸나이다 나만
홀로 피한고로
주인께 고하러
왔나이다),
'하나님의 무기' 등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
(신 32:41
나의 번쩍이는
칼을 갈며
내 손에
심판을 잡고
나의 대적에게
보수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보응할 것이라)
그런데 이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뜻으로 나타났던 '횃불'이란 단어에도 적용되었다.
(창 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러므로 여기서의 '번개'는 그때 사실을 회상시키는 말씀으로도 해석된다.
▶ 나팔소리.
- (19:16 제삼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산의
연기 - 직역하면 '연기가 나는 산'이다. 일찍이 아브라함과의 계약 때에도 연기가 있었고
(창 15:16-17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후일 이사야가 하나님을 보았을 때도 성전에 연기가 가득했던 것과 같이
(사 6:4
이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온 산이 연기로 자욱했다는 것은 산 전체에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히 임했음을 나타낸다.
그런 의미에서 시내 산은 진정 하나님의 산이었다.
(3:1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 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출 20:19]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 하나님의 지존하신 위엄 앞에서 백성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었으므로 모세에게 중개자의 역할을 부탁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암시해 준다.
(딤전 2:5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히 12:24 새 언약의
중보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낫게 말하는
뿌린 피니라).
▶ 우리가
죽을까 하니이다
- '우리가 죽지 않도록'이란 뜻이다.
비록 죄를 범하지 아니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을 직접 대면하면 죽는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33:20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하물며 죄인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은 자 중의 하나이다.
(사 6: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출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시험하고
-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두려워하는지를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이 참된 것인지를 시험을 통해 증명하시는 것이다.
[출 20:21]
백성은 멀리 섰고 모세는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니라.
▶ 하나님의
계신 암흑
- 때때로 하나님은 숨어 계시는 분으로 인식되었다.
(시 10:1
여호와여 어찌하여
멀리 서시며
어찌하여 환난
때에 숨으시나이까;
13:1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
89:46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 주의 노가
언제까지 불붙듯
하시겠나이까;
사 45:15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이 도무지 감당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숨김으로써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당신의 자비로우심에서 연유한다.
(삼상 22:10
아히멜렉이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묻고 그에게
식물도 주고
블레셋 사람
골리앗의 칼도
주더이다;
왕상 8:12 그때에 솔로몬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캄캄한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시 18:9 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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