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일 목요일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지혜는 말한다.

 

잠언 81-11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2) 그가 길가의 높은 곳과 사거리에 서며

3) 성문 곁과 문 어귀와 여러 출입하는 문에서 불러 가로되

4)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부르며 내가 인자들에게 소리를 높이노라

5)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할지니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마음이 밝을지니라 너희는 들을지어다

6) 내가 가장 선한 것을 말하리라 내 입술을 열어 정직을 내리라

7) 내 입은 진리를 말하며 내 입술은 악을 미워하느니라

8) 내 입의 말은 다 의로운즉 그 가운데 굽은 것과 패역한 것이 없나니

9) 이는 다 총명 있는 자의 밝히 아는 바요 지식 얻은 자의 정직히 여기는 바니라

10)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나의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11)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음이니라.

 

 

이 세상은 불의(不義) 세상, 즉 간음의 세상이다.

 

이것을 대유곽(娼家)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창기는, 그 정신의 대표자이다.

 

유곽과도 같은 이 세상에 있어서는, 만사가 비밀로 행해진다.

그 시민은 모두 암흑을 사랑한다.

 

그들은 언제나

'황혼에, 밤에, 밤중에, 흑암 중에 있음' (잠언 7:9 일역)을 좋아한다.

 

그들이 즐겨 말하는 것은, 내밀(內密)이다.

 

'남편은 집에 있지 않다. 멀리 출타(여행)하여 손에 전대를 가졌다.

보름이 안 되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게다'(7:19 일역)라고.

바울이 말한바 '부끄러워해야 할 숨은 일'이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거의는 이것이다.

즉 부끄럽게 여겨야 할, 공명을 꺼려하는 일들이다.

 

반드시 기루 또는 대합다방에서 만이 아니다.

정당회사, 때로는 교회에 있어서까지, 의논되는 것은,

거의가 은밀에 속한 것이다.

 

'집안의 은밀'(사생활의 비밀)이라면서,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은밀(비밀) 아닌 곳에 행복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는 은밀을 싫어하신다.

 

그녀(지혜)는 종다리처럼 광명을 사랑한다.

 

창기는 불의한 이 세상의 대표자이고,

호크마 즉 지혜는 하나님 나라의 대표자이다.

 

한가지로 여성인데, 이자 사이에 운니의 차이가 있다.

 

창기가

 

'집의 창문으로, 살창으로 내어다 보며, 한 지혜 없는 자를 유혹한다'(7:6-7 일역)에 대하여,

 

지혜는 공공연하게 가로에 서서 외친다.

 

'지혜는 부르지 않는가, 명철은 소리를 내지 않는가(1).

그녀는 길 가 높은 곳에, 사거리의 가운데 서서 외친다(2).

성 입구에서, 그 문 곁에서, 문 입구에 서서, 소리 높이 부른다(3)'(일역)

 

창기는 어둑어둑한 방안에서 요염한 말로 속삭이고,

지혜는 시민집합의 장소인 성문에서 높이 소리를 지른다.

 

'여자답지 않다'고 할 것인가?

그녀는 너무나도 깨끗하여, 감출 것이 없는 것이다.

 

이것은 '말괄량이'가 아니다.

영랑하기 옥 같은 마음의 상태이다.

자기 예술을 힘으로 하는 성악자가 공중 앞에서 노래하기를 좋아하듯,

자기 청정을 의심치 않는 지혜 호크마는,

공공연하게 사람 앞에 서서, 대의를 부르짖고 기뻐하는 것이다.

창기는 어리석은 자를 한 사람 한 사람 적당히 대하는데 대하여,

 

지혜는 만인을 상대로 말한다.

 

'사람들아, 네 너를 부른다. 내 소리를 높여 인자들을 부른다.

어리석은 자들아, 너희는 명철을 배우라.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라(5)'

 

지혜가 기뻐하는 것은, 진리와 공의이다.

그러므로 그녀(지혜), 그것을 만인에게 전하려 한다.

 

그녀는 만인에게 호소하고,

만인을 가르치며,

만인을 인도하여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녀가 오만해서가 아니다.

그녀가 보편적 진리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러 대중을 찾기 때문이 아니다.

만인의 통유성에 호소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전 인류와 행복을 함께 하려는 것이, 지혜의 특유성이다.

 

지혜의 길은 공명이다.

세계적, 인류적이다.

그러므로 그녀(지혜)에게 확신이 있다.

 

사람은 자기 위해 구하는 때에 의심하고,

세상 위해 구하는 때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기주장을 공표하여 말한다.

 

'너희는 들으라, 나는 선한 것을 말하고, 내 입술은 옳은 것을 말함이로다(6).

내 입은 진실을 전하고, 내 입술은 악한 것을 미워함으로라(7).

내 입의 말은 모두 다 옳고, 그 속()에 거짓과 사특함이 없도다(8).

이것은 모두, 총명한 자에게는 진실로 되고, 지식을 얻는 자에게 의로 되도다(9)'.

 

(지혜) 말에 틀림이 없다.

그리고 이것을 증명하는 자는 지자와 식자라고 한다.

 

'지혜는 지혜의 자식에게 의로 되도다(옳게 여겨지도다)'-(마태복음 11:19 일역)

있음은 이것이다.

 

으쓱거리는 말 같이 들리나, 그렇지 않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진리는 자증자이다. 진리를 증명하는 것은, 진리 그것이다.

 

지혜 즉 인생의 실제적 진리를 증명하는 자는,

이를 실험적으로 획득한 자이다.

 

지혜는 복음 진리이다.

이것은 공명하고도 정대, 만인의 양심에 호소해야 할 것,

이것을 전하는 때에 내 입에 말은 다 바르고(의롭고),

그 속()에 사특함과 거짓이 없다.

 

그리고 대저 진리를 증명하는 것은, 이 세상의 세론이 아니다.

대학자도, 또한 그 감정을 잘 못하는 경우는 아주 많다.

 

지혜를 옳다고 하는 자는 지혜의 자녀이다.

십자가의 복음을, 하나님의 진리로서 아는(인정하는)자는,

복음의 자녀 즉 신자이다.

 

헤롯왕의 지배하에 있는 신학자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영아 예수가,

늙은 안나와 시므온에 의해 영접된 것과 같은 것이다.

 

더구나 지혜는 금은을 물리치고, 자기를 제공한다.

 

'너희는 가르침(훈계)을 받으라. 은을 받지 말라. 정금보다 도리어 지식을 얻으라(10).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낫고, 뭇 보배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11)'.

 

오늘 지혜라든가 지식이라면, 금은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참된 지식은 금은 이상이다.

 

* (내촌감삼의 19255'성서지연구'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