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2일 목요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사람의 길을 정하시는 여호와

 

성 경: [16:1-9]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16:1]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9절까지는 매 절마다 '여호와'라는 호칭이 등장함으로써(8절 제외)

특별히 신앙적 색채를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 여기서 '경영'은 원어상

'제어하다', '다스리다'란 뜻인 바,

'마음의 경영'은 곧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 등 모든 것을 동원하여

총력을 다하여 생각하고 꾸미는 계획이나 사상들을 가리킨다.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 여기서 '말의 응답'은 문자적으로

'혀의 응답'이다. 혹자는 이를 '듣는 것'으로 해석하여

상반절에 대한 모든 계획이나 사상들의 최종적인 응답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주어진다는 것이라고 읽는다.

 

그러나 본 구절에 있어서 ''는 상반절에 언급된 계획에 대한

표현의 수단으로 나타나는 바(Delitzsch, Zockler),

제아무리 인간이 탁월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적절히 표현하는 수단인 혀를

적당한 시기와 감동적인 움직임으로 만드시는 것은

여호와께 달려 있다는 의미이다.

 

(15:23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은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10:19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16: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자기 보기에는 - 문자적으로는 '자신의 눈 안에는'이란 의미로

눈이 그 사람의 전인격을 대변하는 곳이란 점에서

여기서는 자신의 주관적인 견해에 따른 편협된 판단을 가리킨다.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 하나님께서 인간의 외적 행위는 물론

그 내면의 은밀한 모든 부분까지도 보시고

당신의 공의의 속성에 준거해 판단하신다는 의미이다.

 

(4: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 이는 1,2절에 나타난 바대로

모든 내적, 외적 측면의 동인과 과정과 그 결과를

곧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탁할 것을 지시하는 말이다.

 

(벧전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16:4]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 이는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모든 만물을)

자신을 위해(자신의 목적을 따라) 만드셨다

(hath made all things for himself, KJV)는 의미로서,

각 피조물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저마다의 목적과 용도를 가지고 피조 되었다는 뜻이다.

 

실로 모든 만물과 그것을 통해 발생되는 수많은 상황들이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이라는 하나의 통일된 법칙 속에서 성취된다는 것이다.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 종교 개혁 시대의 많은 주석가들은

이 문장을 예정론에 접목시켜 이미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遺棄)가 예정되었다는 측면에서 해석하나,

 

여기서는 그러한 교리적인 문제보다는

단지 '악한 날'이 하나님의 '심판의 날'이란 의미에서(Delitzsch, Zockler)

악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형벌의 날이 예비되어 있다는

당위적인 결과의 문제만을 논하고 있는 듯하다.

 

 

[16:5]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참조 : (6:17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15:9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

25-26 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라도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참조 : 11:21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

 

 

[16:6]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인하여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 본 구절은

'인자와 진리'가 돈독한 신앙의 바탕 위에서만 스며 나오는 것이란 점에서

그 내적, 외적 행위의 결과가 아닌 근원적인 믿음의 상태가

하나님께 의로 보여지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

 

(58:7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7:47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 여기서 '떠나게 된다'

원어상 '떠나다'란 의미외에 '쫓아버리다'란 뜻도 함축하는 바,

이는 단순하게 악에서 돌이켜 떠나는것 뿐아니라

철저하게 악을 쫓아버려 멀리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본 구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뜻은

곧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명령을 따라 순전하게 산다는 것인 바,

곧 그러한 삶은 타인은 물론 그를 적대시하는 자들의

증오와 적의를 사랑과 우정어린 관계로 돌이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실로 이러한 상황은 이스라엘의 신앙과 불신앙의 역사에 따른

평화와 고난의 실례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34:24 내가 열방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번씩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 보이러 올 때에 아무 사람도 네 땅을 탐내어 엿보지 못하리라;

 

대하 17:10 여호와께서 유다 사면 열국에 두려움을 주사 여호사밧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매).

 

 

[16:8] 적은 소득이 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참조 : 15:16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

 

, 불의 - 여기서 '()'

'(도덕적, 법적 의미에서의) 깨끗함'을 가리키며,

'불의(不義)'는 문자적으로 '(법정적 의미에서의) 의가 없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일반적인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종교적 규례의 준수 여부에 있어서의

, 불의의 개념마저 시사하고 있다.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 혹자는 이를

'하나님께서(사람이 마음으로 계획한 길을) 확고하게 하신다'

의미로 해석했으나

(Luther, Umbreit, Bertheau,Elster),

 

그보다는 여호와께서 그 사람의 걸음을 결정하시고 지시하시며

인도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더 낫다. (Jerome, Delitzsch, Zock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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