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특성
성 경: [히 7:22-28]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히 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
저자는 '언약'의 헬라어 '디아데케스'를 본서에서 17회나 사용하여 중시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처음 나타난다.
'디아데케'는 '유언', '서약', '의지'라는 의미로 70인역(LXX)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주권적이고도 은혜로운 '의지'를 가리킨다(Lane).
동시에 그 단어에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가 함축되어 있다(Morris).
문맥상 본절의 언약은 제의적(祭儀的)인 것으로(Lane)
옛 언약, 즉 구약의 제의는 하나님께 가까이 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세우신 것이었으나
] 외형적인 것만 정결케 하고
내적인 양심은 정결케 할 수 없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18절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언약을 수립하시고,
(8:8-10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새 언약을 맺으리라
9) 또 주께서 이르시기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그들과 맺은 언약과 같지 아니하도다 그들은 내 언약 안에 머물러 있지 아니하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지 아니하였노라
10)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9:15-20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17)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18)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19)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20)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새 언약을 통해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에게 온전히 나아올 수 있도록 하셨다.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9;14-15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새 언약은 구약의 옛 언약보다 '더 좋은 언약'이다.
한편 '더 좋은 언약'인 새 언약에 대한 '보증'은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19절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13:20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보증'에 해당하는 헬라어 '엥귀오스'는 '보증인'이라는 의미로
이 보증인은 '중재자'의 뜻인 헬라어 '메시테스'와는 달리
(8: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2:24 새 언약의 중보자이신 예수와 및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것을 말하는 뿌린 피니라)
보증인 자신의 인격과 생명을 담보로 자신이 행한 말에 대해 보증한다는
강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Michel).
그리스도는 자신을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의 구원에 대한 담보로
구원의 영원한 보증이 되신다.
[히 7:23]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
저자는 새 언약의 제사장은 예수 한 분뿐인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그 수효가 많음에 주목한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론부터 시작해서 A.D. 70년 예루살렘멸망에 이르기까지
83명의 대제사장들이 취임했었다고 한다(Antiq. 20,227).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수효가 많다는 것은
그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이며
그들이 행하는 제의가 불완전함을 반영한다 (Michel, Thompson).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10:1-4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7: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죽음을 인하여 제사장직을 감당할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였던 반면
예수께서는 영원히 살아계신 분이시므로 뒤를 이을 다른 제사장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스도를 뒤이을 제사장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으로 행하신 사역의 완전성과 영원성을
'아파라바톤'은 70인역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단어로
제사장이 그의 의무를 계속한다는 의미이다(Josephus).
예수의 영원성은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의 일시성과는 달리
그의 제사장직이 영구적임과 동시에 최종적(最終的)인 것임을 시사한다(Lane).
[히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 그러므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덴'은 본절이 23,24절의 논리적 귀결임을 나타낸다.
(23-24 제사장 된 그들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으로 말미암아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24)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 '온전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스 토 판텔레스'는 '완전히', '절대적으로'라는 의미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으로는 결코 이를 수 없는 구원의 완전성을 뜻한다.
한편 '구원하실'은 '구원'이 미래에 있을 종말론적인 유업을 가리키는 반면,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본절의 '소제인'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그리고 승천으로 말미암아
현재에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시사한다. (Lane).
(2:3-4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6:4-5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9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이같이 말하나 너희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것 곧 구원에 속한 것이 있음을 확신하노라)
그리스도는 옛 언약의 제의 행위에 의지하지 않고
새 언약인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에게
현재는 구원에 참여케 하며 동시에 종말론적 구원에의 참여를 보증하신다.
▶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간구하심이니라'는 '중재하다'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하나님께 특별한 복을 내려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우편에 좌정하심을 가리킨다(Lane, Snell, Morris).
이러한 그리스도의 중재 사역으로 인해 사람들은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고백할 때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히 7:26]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 '이러한 대제사장'이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영원하시며
(24절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장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느니라),
자기를 의지하는 자들은 온전히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25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항상 살아서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께 중재할 수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새 언약에 합당한 제사장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놓으신 분이다.
저자는 영원한 구원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신 대제사장 그리스도에 대해
다섯 가지로 묘사한다.
이 다섯 가지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대제사장으로 지녀야 할
성품과 지위를 나타낸다(Hauck).
⑴ 거룩하고 - 이는 70인역에서 '충실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 12:1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들이 인생 중에 없어지나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지상 생활 가운데서 보여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을 나타낸다.
(5:7-8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8) 여호와여 나의 원수들로 말미암아 주의 의로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길을 내 목전에 곧게 하소서).
⑵ 악이 없고 - 이는 '교활하지 않은', '순수한'이라는 의미로
예수께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순수하셨으며 어떠한 악과도
접촉하지 않으셨음을 시사한다. (Moffatt, Grundmann, Bruce).
⑶ 더러움이 없고 - 이는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이라는 뜻으로
제의적 순결성을 나타낸다(마카비 2서 15:34).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제의 의식을 통해서
외적으로 더럽혀진 자신을 깨끗이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전혀 더럽혀지지 않은 온전한 도덕적 순결성을 소유하셨다(Morris).
⑷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 이것은 앞서 언급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성품과 연결된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는 도덕적으로 죄인들과 분리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죄인인 인류와는 다른 존재이시다(Buchanan, Peterson).
⑸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 '하늘보다 높이'의 헬라어 '휩셀로테로스 톤 우라논'은
하나님의 보좌를 가리키는 표현이다(Lane).
예수께서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과는 달리,
승천하셔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곧 바로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신 대제사장으로서 완전한 중재자가 되신다(Morris).
[히 7:27] 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라
▶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은 속죄일에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속죄 제사를 드리기에 앞서
항상 자기 죄를 위한 속죄 제사를 드린다.
(5:3 그러므로 백성을 위하여 속죄제를 드림과 같이 또한 자신을 위하여도 드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레 4;3-12 만일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의 허물이 되었으면 그가 범한 죄로 말미암아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 그 수송아지를 회막 문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그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여호와 앞에서 잡을 것이요
5)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은 그 수송아지의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서
6) 그 제사장이 손가락에 그 피를 찍어 여호와 앞 곧 성소의 휘장 앞에 일곱 번 뿌릴 것이며
7) 제사장은 또 그 피를 여호와 앞 곧 회막 안 향단 뿔들에 바르고 그 송아지의 피 전부를 회막 문 앞 번제단 밑에 쏟을 것이며
8) 또 그 속죄제물이 된 수송아지의 모든 기름을 떼어낼지니 곧 내장에 덮인 기름과 내장에 붙은 모든 기름과
9) 두 콩팥과 그 위의 기름 곧 허리쪽에 있는 것과 간에 덮인 꺼풀을 콩팥과 함께 떼어내되
10) 화목제 제물의 소에게서 떼어냄 같이 할 것이요 제사장은 그것을 번제단 위에서 불사를 것이며
11) 그 수송아지의 가죽과 그 모든 고기와 그것의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12) 똥 곧 그 송아지의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곳인 정결한 곳으로 가져다가 불로 나무 위에서 사르되 곧 재 버리는 곳에서 불사를지니라;
16:6-10 아론은 자기를 위한 속죄제의 수송아지를 드리되 자기와 집안을 위하여 속죄하고
7) 또 그 두 염소를 가지고 회막 문 여호와 앞에 두고
8) 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
9) 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
10)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도 역시 불안전한 인간으로
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번, 자신과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희생 제사를 드렸으나 저자는 본절에서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 자신도 대제사장이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 희생 제사를 드린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날마다' 드리는 것으로 표현한 이유는
(9:7 오직 둘째 장막은 대제사장이 홀로 일 년에 한 번 들어가되 자기와 백성의 허물을 위하여 드리는 피 없이는 아니하나니,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대제사장이 제사를 매일 드렸다는 의미보다는 그가 부주의로 죄를 범했을 때
매일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할 필요가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Bruce).
그러나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므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으실 뿐만 아니라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반복적으로 제사를 드리실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드린 한 번의 제사는
하나님의 독생자 되신 자신의 몸을 제물로 바친 완전한 제사였기 때문이다.
▶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 - 저자는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사실을 그의 대제사장직의 핵심적인 기능으로 제사한다(Zimmermann).
죄 없으신 완전한 대제사장인 그리스도가 완전한 자신을 제물로 드린 그의 속죄사역은
일시적인 레위 계통 제사장들의 속죄 사역과는 달리
한 번으로 영구화(永久化) 될 수 있었다.
저자는 본절을 통해서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들의 불완전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도의 속죄의 완전성을 설명하고 있다.
[히 7:28]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
저자는 본장을 결론지으면서
사람인 제사장과 온전하신 제사장이신 그리스도와 세 가지 차이점을 제시한다.
(1) 율법과 맹세의 말씀.
옛 언약에 속한 레위 제사장들은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물려받았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맹세하셔서 약속하신 말씀에 근거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의 신실한 맹세의 약속을 성취하였으며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다.
(2) 사람과 아들.
옛 언약의 제사장들은 유한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으로서
반복적이고 일시적인 역할을 하였으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원히 살아계셔서 온전한 중재 사역을 행하셨다.
(3) 약점을 가진 자와 온전케 되신 자.
옛 언약의 제사장은 약점을 가져서 불완전한 사역을 행할 수 밖에 없었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셔서 지상 생활의 고난 가운데서도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믿는 사람의 구원의 근거가 되셨다.
(2: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5:8-9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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