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4일 화요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자격 2

 

성 경: [5:5-10]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

 

저자는 앞에서 모세와 예수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모세와 예수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서 유사성이 있었으나

 

(3:1-2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우월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음을 논증하였다.

 

(3:3-6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같은 방법으로 본절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과 그리스도가 비교되고 있다.

양자는 스스로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거하기 위해 시2: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하늘의 특권을 지닌 자이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존재임을 제시한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한편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라는 이름 대신에

'그리스도'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받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Morris, Lane).

 

 

 

[5: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 저자는 앞절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110:4을 인용하고 있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의 헬라어 '카타 텐 탁신 멜키세덱'

멜기세덱계열의 제사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형태의

제사장이시라는 의미이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에게는 후손이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Morris, Moffatt,Hewitt).

 

그리스도와 멜기세덱은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 리 스 도

멜 기 세 덱

존재의 시작과 끝이 없음

(8:58;1:4)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음(7:3)

대제사장이시며 만왕의 왕이심

(19:16)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면서 살렘 왕임(7:1;14:18)

생명의 떡과 포도주로 예표되는 자신의 몸과 피를 인류의 대속물로 주심

(26:26-29)

아브라함에서 떡과 포도주를 줌

(14:18)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레위 지파를 좇는 제사장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제사장이 되심(5)

레위 지파 이전의 인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됨(7:1)

 

저자는 이러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신 존재임을 논증하고 있다.

 

아론계통의 대제사장은 오로지 제사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제사장이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로서 훨씬 더 우월하시다(Bruce).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 본절은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당하셨음을 시사한다.

 

(2:14-18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육체'''을 뜻하는 말로서 ''과 반대되는 물질적인 육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셨으며

인간이 느끼고 당하는 감정이나 어려움을 똑같이 느끼시는

대제사장이심을 시사한다.(Bruce)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

 

본 구절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지상 생활 중 겟세마네에서 드린

고뇌에 찬 기도 장면에 대한 묘사일 것이라고 주장하나(Bruce, Robertson, Hewitt)

 

(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예수의 지상 사역 중 어느 특정한 순간에 적용시키기 보다는

그의 대제사장적인 사역 전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타당하다(Lane, Maurer, Morris).

 

한편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는 희생 제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의

제의적(祭儀的) 용어이다(Maurer).

이것은 1절에서 언급된 대제사장의 제사와 평행을 이룬다.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구와 소원'을 의미한다(Rasco).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 '경외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율라베이아스'에 대해서는 두가지 해석이 있다.

 

(1) '두려움'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Morris).

예수는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을 느끼셨으나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복하셨다.

 

(2) '율라베이아스'''에 해당하는 접두사'''붙들다'는 뜻의 헬라어 '람바노'의 합성어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나타낸다고 한다(Robertson).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본문은 시22:24'부르짖을 때 들으셨도다'와 상응된다.

 

(22: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이것의 일례로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을 들 때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14:36)라는 예수의 기도가 성취되지 않은 것으로

오해될 수 있으나

 

사실상 예수의 기도의 목적은 고난의 잔을 옮기는 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으므로

 

(14:32-36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그의 기도는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의 기도를 받아들이셨다(Boman, Rissi, Maurer).

 

이 사실을 저자가 본절에서 밝히는 이유는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의 제사가 항상 받아들여진 것은 아닌 반면에

예수의 기도는 받아들여졌음을 주지시키기 위함이다(Lane).

 

한편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과 연결된다.

 

'죽음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다나투'

예수께서 죽음을 경험하지 않으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예수를 지배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활을 통해 죽음의 영역을 극복하셨음을 시사한다(Vos, Fri-edrich).

 

 

 

[5: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고난 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시다(Morri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순종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며 순종의 과정 속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Bruce, Morris).

 

본절에서 사용된 '고난받다'는 본서에서 오직 '예수의 수난'에만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암시한다.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온전하게 되었은즉 - 본절은 고난받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본질이

불완전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해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온전케 되셨음을 뜻한다.

(Lane, Hewitt, Meeter, Morris).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구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그의 백성의 대제사장으로 완전하다는 인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Klappert, Hewitt).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그리스도께서는

온전케 되신 결과로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본절의 '순종'은 앞절에 언급된 예수 자신이 행하신 '순종'

죽음의 고난을 받기까지 행한 철저한 복종을 의미한다(Lane).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것과 같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그러한 순종을 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의 헬라어 '아이오니우''끝없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참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참 하늘에 속한 것임을 암시한다(Morris, Williamson).

 

 

 

[5: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순종으로 온전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칭하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서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율법하에 있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다른

약속의 은혜에 의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시사한다(Hew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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