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3일 일요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의 정의

 

성 경: [11:1-3]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 '실상이요'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스타시스'

'아래에'라는 뜻인 '휘포''서게하다', 또는 '확립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히스테미'의 합성어이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아래에 확립하다' 혹은 '아래에 서다'를 뜻하는 것으로

'기초'(Morris), '실체'(KJV), '확증'(NIV), '객관적 실체'(Lane)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휘포스타시스'는 사람의 생각에 좌우되는 주관적인 실체가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독립되어 있는 객관적인 실체를 가리킨다.

 

이러한 객관적 실체는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에 확신을 더하는 근거이다(Lane).

바꾸어 말하면 믿음은 그리스도인이 객관적 실체를 확신하는 것이다.

 

믿음의 이러한 특성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진리의 말씀을 견고히 붙잡게 하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확신하게 한다(Grasser).

 

한편 저자는 본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정의함으로써

'믿음''바람'(hope)을 거의 동일시 하였다.

 

이는 믿음의 미래 지향적인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Thompson).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보지 못하는 것들'의 헬라어 '프라그마톤...우블레포메논'에서

'것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라그마톤'

'되어진 것', '사실', '행위', '사건', '업무'등을 의미하는 말로서

인간사(human events)를 의미한다.

 

저자는 '프라그마톤'을 사용하여 믿음을 인간사의 영역에 관련시켜 말하고 있다(Lane).

 

이는 '보지 못하는 것들'이 플라톤의 철학에서 말하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늘나라의 것들이 아니라 아직 보여지지 않은 사건들

즉 종말론적 미래에 나타날 사건들을 가리키는 것임을 시사한다(Williamson).

 

믿음은 미래 지향적이다.

이와 같이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믿음의 능력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고 보이지 않는 미래를 향해

담대하고 진지하게 나아가게 한다(Lane).

 

한편 '증거'의 헬라어 '엘렝코스'

법률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는 것으로서(Morris)

'객관적인 증거' 혹은 '증명'을 의미한다.

 

이것은 믿음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임을 시사한다.

 

 

[11: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 '선진들'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프레스뷔테로이''조상들'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앙 위인들을 지칭한다(Morris).

 

(1:1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한편 '이로써'는 구약 시대의 신앙 위인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믿음의 결과로

하나님으로부터 확신과 증거를 얻었다.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

 

'믿음으로'는 본절에서 31절에 이르기까지 헬라어 본문의 첫 단어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옛 선진들이 믿음으로 살고 행동한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4-31절까지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인물이나 사건들에 대해 사용된 반면

본절에서는 저자와 수신자들을 포함한

당시의 모든 그리스도인에 대해 사용되었다.

 

본절에서의 강조점은 헬라어 원문의 첫 문장인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진리에 대한 인식이 믿음을 통해서 가능함을 시사한다.

 

특별히 본절은 창 1:1에 나타나는 세상 창조에 대한 인식과 연결되어

하나님께서 모든 세계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사실은

오직 믿음으로만 인식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 '보이는 것'

가시적인 우주를 가리킨다(외경 지혜서 13:7).

 

한편 '나타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파이노메논'

헬라어의 오랜 철학적 전통에서 기인한 표현이다(Williamson, Philo).

 

저자는 유대주의 전통과 헬라 철학에서 사용되는 단어를 차용하여 그 내용을 부정하고 있다.

 

이는 저자가 당시 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플라톤과 필로의 우주론,

즉 태초 혼돈 상태에 있었던 가시적인 물질들을

창조자가 이데아나 원형을 사용하여

질서를 부여함으로 우주가 생성되었다는 우주론을 배격하고

특히 플라톤의 영향을 받은 헬라적 유대주의의 관점에서

창세기 1장을 이해하려는 시각을 막기 위한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이 형태를 갖추지 못한 물질들로부터 세계를 창조하였다';지혜서 11:17, Lane).

 

'보이는 것' 즉 물질세계는 '나타난 것' 즉 창조 이전에 존재했었던

어떤 물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무()에서 창조된 것이다(Ehrhardt).

 

즉 저자는 '()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의 교리를 강조하고 있다.

(Widders, Bruce, William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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