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8일 화요일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그리스도 희생의 완전성

 

성 경: [9:23-28]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저자는 본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그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을 비교하여

희생 제물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를 대조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케 할 필요가 있었으나 구약에서

모세를 통해 허락하신 첫 언약과 장막을 통한 희생 제사는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이다.

 

이러한 모형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 흘림이 필요하였다.

왜냐하면 율법에 따라 정결케 하는 것은 피 흘림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2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 '하늘에 있는 것들'

하늘 성소에 들어갈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Bruce, Spicq, Morris, Moffatt, Delitzsch,Hewitt).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인 지상에 있는 것들은 피로써 정결케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은 외형적인 정결케 됨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그것들''더 좋은 제물', 즉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영적이고 내적인 양심의 정결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전이기 때문이다.

 

(2: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한편 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 '제물'의 헬라어 '뒤시아이스'는 복수이다.

이것은 한 번의 제사로서 속죄 사역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는 총칭적 용법으로서

그리스도의 피를 통한 제사가 단번에 행한 영원한 제사임을 시사한다(Morris).

 

 

[9: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를 통해 들어가신 곳은 지상의 성소가 아니다.

지상의 성소는 단지 외형적(外形的)인 것만을 속죄하는 불완전한 것으로

하늘의 실체를 보여주는 그림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지상 성소의 실체인 하늘의 성소에 들어가셨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 거하는 성소인 참 하늘에 들어가신 것은 (Hofius)

이미 십자가상에서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기 때문에,

지상의 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들처럼 희생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 중보하시기 위함이었다(Hewitt, Morris, Bruce).

 

 

[9:25] 대제사장이 해마다 다른 것의 피로써 성소에 들어가는 것 같이 자주 자기를 드리려고 아니하실지니 -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일 년에 한 번씩 속죄일에 자신과 가족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를 속죄하기 위해 희생 제물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갔다.

 

*참조 : (16).

 

이러한 속죄 행위는 매년 반복되었으며 이 속죄 행위를 위해 매년

다른 희생 제물의 피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구속 사역을 위한 그리스도의 희생은 영원한 효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반복해서 드릴 필요가 없다.

 

'드리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페레'는 제사 행위를 묘사할 때 사용된 단어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드린 사역과 속죄일의 제사 행위를 비교하고 있다.

 

 

[9:26]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한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물로 드려 죄를 없이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리하면 그가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자주 고난을 받았어야 할 것이로되 - '그리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에페이'는 문자적으로 '만일 달랐다면'이란 의미이다(Morris).

 

이것은 저자가 설정한 가정(假定)으로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행한 것처럼

'만약 그리스도께서 자주 자신을 드렸다면'이란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옛 언약의 대제사장처럼 자주 자신을 드렸다면

여러 번 죽음을 당하셔야 했을 것이다.

 

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끝에 나타나셨느니라 본문은

앞서 언급한 사정에 대한 대답이다.

 

저자는 그 대답으로 '단번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단번에'는 앞서 언급한 '자주'와 대조되어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절정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 죄를 완전히 제거하셨음을 나타낸다(Bruce, Lane, Hewitt).

 

한편 '세상 끝'은 구속사역의 성취의 때인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상에서 구속 사역을 성취함으로써

개인의 종말과 역사의 종말을 도래(到來)케 하셨다(Bruce, Morris).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

 

본절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 사역의 최종적인 완전성을 증명하는 예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 죽음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며 최종적인 것이다.

죽음 이후에 모든 사람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본절은

53:12(LXX)에 나타난 주의 종의 사역을 암시한다.

 

(53:12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도 앞서 언급한 모든 인생에게 적용된 죽음의 원리가 적용되어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으셨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죽음이 인생의 최종성을 의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목적 또한 최종적(最終的)인 것이다.

 

그가 자신을 '단번에' 드린 것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온전히 제거하기 위함이었다.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 본절은 구약의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 연결된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속죄제를 드리기 위해 지성소에 들어갔을 때

백성들은 근심 가운데 대제사장이 직무를 마치고 지성소에서 나오기를 밖에서 기다린다.

 

대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왔을 때 백성들은 대제사장이 대신 드린 속죄제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음을 확신하게 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하늘 성소에 들어가셔서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셨다가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자신을 기대하는 자를 위하여 두번째 나타나시는

'파루시아'('강림')와 대비된다(Lane, Bruce).

 

옛 언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제의 제물을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간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는 초림과 십자가의 구속 사역을 통해 백성들의 죄를

완전히 제거하시고 하나님 존전에서 중보 사역을 행하시며

 

(24 그리스도께서는 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또한 구약의 대제사장들이 속죄제를 드리고 성소에서 나올 때 밖에서 기다리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속죄제를 받으셨음을 확신하고 기뻐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심으로 그리스도를 기대하며 기다리는 자들은

구원의 상소자로서 영원한 기업을 누리며 완전한 구원을 소유하게 된다.

(Hewitt,Lane, Bruce).

 

(1:14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2;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5: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