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11일 화요일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그리스도

 

성 경: [7:11-2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7:11]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

 

본절은 '에이'('만약')로 시작하는 가정법으로 율법과 연관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불완전함을 나타낸다.

 

'온전함'의 헬라어 '텔레이오시스'는 인간과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혹은 하나님 앞에서의 인간의 온전한 행위를 뜻한다(Lane, Robertson).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온전한 관계를 맺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Moffatt).

 

왜냐하면 레위 제사장들의 제사 행위로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죄악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사람들이 그들에게서 받은 율법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게 해줄 뿐

그것을 완전히 준수해서 의롭다 함을 얻게 해주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래서 아론을 좇는 레위 계통의 제사장 대신에

멜기세덱을 좇는 별다른 제사장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별다른''전혀 다른 종류'를 의미하는 것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새 제사장이 과거 아론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과는 전혀 다른 존재이며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이 할 수 없었던 '온전케 함'을 하시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백성이 그 아래서 율법을 받았으니) -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을 근거로 하여 율법을 받았으니'라는 의미로 제사장직과 율법이

서로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시사한다(Morris).

 

 

[7:12] 제사 직분이 바꾸어졌은즉 율법도 반드시 바꾸어지리니 - 제사장 직분과 율법은

불가분리(不可分離)의 관계를 맺고 있다.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이 불완전하여 백성을 온전케 할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제사장 즉 멜기세덱 계통의 제사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제사장직과 관련된 율법도 불완전하여 바뀌어야 함을 시사한다.

 

 

[7:13] 이것은 한 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는 다른 지파에 속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

 

본절은 12절에서 언급된 '율법의 변역'에 대한 내용이다.

율법은 오직 레위 지파만 제사장직을 감당하게 하였다.

그러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새로운 제사장은 율법에 규정된 레위 지파가 아닌

다른 지파 곧 유다 지파에 속한 제사장이었다(Morris).

 

이 유다 지파는 제사장 지파가 아닌 왕족 지파였기에 저자는 이 지파 사람 중,

어느 한사람도 제단 일을 받들지 않았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는 유다 지파에 속했던 다윗과 솔로몬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음이 나타난다.

 

(삼하 6:13 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7-18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24:25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니 이에 여호와께서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매 이스라엘에게 내리는 재앙이 그쳤더라;

 

왕상 3: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제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8:62 이에 왕과 및 왕과 함께 한 이스라엘이 다 여호와 앞에 희생제물을 드리니라)

 

이러한 경우 다윗과 솔로몬이 직접 제사 의식을 집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희생제물을 준비하고 제사장이 제사를 행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Morris).

 

 

[7:14] 우리 주께서는 유다로부터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우리 주께서 유다로 좇아 나신 것이 분명하도다 - 본절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레위 계통의 제사장이 아닌

다른 지파의 제사장임을 나타낸다. (Morris, Bruce, Hewitt).

 

신약성경은 예수께서 유다 지파에서 나셨음을 계속 증거하고 있다.

 

(1:2-3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2: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3;33 그 위는 아미나답이요 그 위는 아니요 그 위는 헤스론이요 그 위는 베레스요 그 위는 유다요;

 

2:29-36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30)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1: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딤후 2;8 내가 전한 복음대로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5;5 장로 중의 한 사람이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겼으니 그 두루마리와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 별이라 하시더라).

 

예수께서 레위 지파에 속하지 않고 유다 지파에 속한다는 사실은

그의 대제사장직이 혈통적인 것에 의존된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질서(秩序)에 의해서 결정되어진 것임을 시사한다.

 

 

이 지파에는 모세가 제사장들에 관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없고 - 오직 제사장은

레위 지파에서만 나오는 것으로 언급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다 지파에 속한 예수께서 대제사장이시라는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심을 암시한다.

 

 

[7:15]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이 일어난 것을 보니 더욱 분명하도다 - '멜기세덱과 같은 별다른 한 제사장'은 시 110:4의 인용으로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11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수 있었으면 (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으니) 어찌하여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한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더욱 분명하도다' 에서 그 분명한 내용에 대한 견해는 두 세 가지이다.

 

(1) 11절에서 말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 직분이 그 효능을

상실하게 된 사실이 분명하게 되었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Westscott).

 

(2) 모세 율법이 폐지되었음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ane).

 

이러한 견해들은 모두 나름대로의 타당성를 지닌다.

 

 

 

[7:16] 그는 육신에 속한 한 계명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고 오직 불멸의 생명의 능력을 따라 되었으니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 본문은 11절의 부정적인 표현 곧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와 동일한 의미로 11절에 대한 보충 설명이다(Lane).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은 포괄적으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것으로

레위 계통의 합법적인 후손, 혹은 어떤 신체적 자격 요건 등을 가리킨다(Michel).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율법에 나타난 바대로

레위 자손의 혈통이나 외적 조건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다.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 본문은 11절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연관된다.

 

저자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대조시켜서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썩거나 죽을 수 밖에 없는 제한된 육체의 계명,

즉 율법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된 것임을 강조한다.(Lane).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리스도는 성경이 증거하는대로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만세의 왕'으로서(딤전 1:17)

 

그의 제사장직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하는 영원한 것이다.

 

 

[7:17] 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

 

본절은 시110:4의 인용으로서 16절에서 저자가 말한 것

곧 그리스도가 무궁한 생명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이다.

 

저자가 본절에서 '증거하기를'에 해당하는 헬라어 '마르튀레이타이'를 사용한 것은

저자 자신이 시 110:4을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말씀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시사한다(Lane).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이 불완전한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과 무관하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직임을 나타내어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의 완전함을 암시한다.

 

 

[7:18]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 본절과 다음절은 저자가

11절부터 언급한 내용의 결론이다.

 

'계명'은 문맥상 제사장직에 관련된 율법을 가리킨다고 볼 수도 있으나(Lane),

16절에서와 마찬가지로 모세의 모든 율법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Morris).

 

한편 '연약하며'의 헬라어 '아스데네스'는 율법 자체가 연약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한다(Lane).

 

또한 '무익하므로'는 율법이 단지 사람의 외형적인 것만을 정결케 할 뿐 그 내적인

양심(良心)을 깨끗게 할수 있는 능력은 없음을 시사한다. (Hewitt).

 

(9:9-10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10: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케 못할지라) - '온전케'는 인간이 하나님과 더불어 이루는

온전한 관계를 의미한다(11).

 

율법은 단지 외형적인 것만 깨끗하게 하고 내적인 양심은 깨끗게 할 수 없어서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과 더불어 올바른 관계를 형성할 수 없었다.

즉 사람들은 제사장직이나 성결 의식과 같은 율법적인 제도에 의해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온전한 관계를 이룰 수 없었다(Riggenbach , Michel).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리라 - '더 좋은'이란

표현은 히브리서 저자의 독특한 표현이다.

 

(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8:6 그러나 이제 그는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그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시라;

 

9:23 그러므로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은 이런 것들로써 정결하게 할 필요가 있었으나 하늘에 있는 그것들은 이런 것들보다 더 좋은 제물로 할지니라).

 

'더 좋은 소망' 즉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으며,

레위적인 율법 제도로는 결코 이룰 수 없었던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되었다(Lane).

 

 

[7:20] 또 예수께서 제사장이 되신 것은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 - 본절과 다음절은

새로운 제사장이신 예수와 레위 계통의 제사장 사이의 비교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엄숙하신 맹세로 말미암아 제사장으로 지목된 반면에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맹세없이 율법에 근거하여 제사장직을 부여받았다.

 

(28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거니와 율법 후에 하신 맹세의 말씀은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을 세우셨느니라).

 

'맹세 없이 된 것이 아니니'는 시 110:4의 추론으로 하나님의 맹세가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에 대한 확고한 보증이 됨으로 신자들은 그의 제사장직에

소망의 닻을 드리울 수 있음을 시사한다.(Schneider, Thompson).

 

(6:18-20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

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 가나니

20)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

 

 

[7:21] (그들은 맹세 없이 제사장이 되었으되 오직 예수는 자기에게 말씀하신 이로 말미암아 맹세로 되신 것이라 주께서 맹세하시고 뉘우치지 아니하시리니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

 

'네가 영원히 제사장이라'는 시110:4의 인용이다.

 

(17증언하기를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이라 하였도다).

 

(110:4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은 하나님께서 맹세하심으로 부여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이 맹세하신 약속의 신실성으로 인해(Cockerill) 보증된 것이다.

 

반면에 율법하에서 이루어진 레위인의 제사장직은

하나님의 맹세나 약속 혹은 보증이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만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16)을 좇아 이루어진 직분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제사장직의 차이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이 레위 계통의 제사장직보다 우월하며,

완전할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언약에 대한 보증임을 암시한다.

 

(22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