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2일 토요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믿음의 도리 3

 

성 경: [10:30-39]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33)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37)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10:30]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노니

 

본절은 신 32장에서 인용된 두 가지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는 인용문을 통해서 배교자에 대한 심판이

공동체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으며(Lane)

그 심판의 엄중함을 나타낸다(Hewitt, Bruce).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 본문은 신 32:35의 인용이다.

 

(32:35 그들이 실족할 그 때에 내가 보복하리라 그들의 환난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닥칠 그 일이 속히 오리로다)

 

신명기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출하시고 변호하심을 나타낸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을 잘 섬겼을 때 원수를 갚아주시고 구원을 이루시며 변호하시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직접 개입하셔서 공정한 의의 원리에 입각해서 심판하신다.(Bruce, Morris).

 

이러한 하나님의 원리는 하나님 백성에게 뿐만 아니라 배교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본문은 배교자에게 반드시 심판이 임할 것임을 시사한다(Lane).

 

 

[10:3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 - 본문은 다윗 왕이 인구 조사를 한 후 심판을 받을 때 한 말의 인용이다.

 

(삼하 24:14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대상 21:13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다윗 왕은 사람의 손보다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본절의 요점은 다윗 왕의 선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할 경우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배교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이 피할 수 없는 무서운 것임을 시사한다. (Lane, Morris).

 

그래서 저자는 '무서울진저'27절의 '무서운'과 연결시켜 배교자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의 엄함을 나타내고 있다.

 

 

[10:32]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견디어 낸 것을 생각하라

 

개역성경에 ''('그러나')가 생략되어 있다.

''는 이전 문단에서(26-31) 배교자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한 반면 32-36절에서는 경고와는 달리 위로의 말씀을 전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 수신자들은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빛을 마음에 받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박해를 받았다.

 

'싸움'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들레신'은 본래 운동 경기를 가리키나 본절에서는 박해를 의미한다(Lane).

 

이 박해가 구체적으로 어떤 역사적 사실을 가리키는 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는 박해는 아니다(12:4, Bruce,Hewitt).

 

수신자들은 박해를 받았으나 그것에서 좌절하지 않고 잘 인내하였으며 저자는 본절에서 수신자들이 과거에 겪었던 박해와 인내를 상기시킴으로 수신자들이 배교에 이르지 않고 하나님을 끝까지 바라보도록 권면하고 있다.

 

 

[10:33-34] 혹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본문은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 박해에 대해 인내했던 구체적인 모습들에 대한 표현이다. 본문은 교차 대구법으로 구성되어 있다(Riggenbach, Vanhoye).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이런 형편에 있는 자 들로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함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

'비방'은 거짓으로 고소하여 비난하는 것을 나타내며

'환난'은 폭력을 동반한 박해를 의미한다(Lane).

 

또한 '구경거리''극장'과 연관된 것으로 공적이고 공개적인 박해를 받는 것을 나타낸다.

 

수신자들은 과거에 주변 사람들에게 거짓으로 고소를 당하기도 하고 폭력을 당하기도 하며 공개적으로 조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한편 '빼앗기는 것'은 폭도들에 의해 재산조차 빼앗기는 고난을 당하는 것을 시사한다. (Morris).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 본문은 고난당한 그리스도인들과 동참함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 재산이 하나도 없이 감옥에 갇힌 자는 밖에 있는 사람이 돌보지 않으면 굶어 죽기 쉬웠기 때문에 당연히 돌보아야 했다.

그러나 당시 그들을 돌보는 것은 감옥에 갇힌 자와 동일한 취급을 받았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자를 돌보는 것은 상당한 위험을 동반하는 행위였다(Bruce).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들은 감옥에 갇힌 자들을 돌봄으로 감옥에 갇힌 자들의 고난에 동참하였다. 비록 이런 행위가 당시에는 위험한 것이라 할지라도 장래에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을 만한 행위이다.

 

(25: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 수신자들이 앞서 언급한 위험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즐거워했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큰 상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Bruce)

 

(6:22-23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저자는 고난과 위험을 감수하며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휘파르크신'(`산업')을 수신자들이 지상에서 고난당하면서 상실했던 '휘파르콘톤'('산업')과 연결시켜 비교함으로 고난과 위험을 인내한 그리스도인들이 받을 산업이 훨씬 더 탁월함을 드러내고 있다(Lane).

 

 

[10: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느니라 - '담대함'은 새 시대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용기있는 신앙을 나타낸다.

 

(3: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담대함'은 그리스도인의 표식이며, 그리스도인들이 비방과 재난을 당하면서도 담대함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에 받을 상 때문이다.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6: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믿음 안에서 당신을 찾는 자에게 상 주시는 분이시며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 상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전한 구원의 축복을 가리킨다. (Lane).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10:36]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 -

 

`필요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크레이안'은 단순히 바라는 어떤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필요한, 없어서는 안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담대함 뿐만 아니라 인내도 그리스도인의 표식임을 시사한다(Lane).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면서 고난과 위험에 직면한다 할지라도 잘 인내하면 하나님으로부터의 '약속'을 받게 된다.

'약속'은 새 언약하에 있는 하나님 백성이 바라보아야 할 최종적인 목표로서 앞절의 `큰상'과 동일하며 `영생'을 의미한다. (Thompson).

 

(9:15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0:37-38]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38)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잠시 잠깐 후면 - 개역성경에는 '왜냐하면'이 생략되어 있다.

이것은 본절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반드시 인내해야 하는 이유를 나타낸다.

 

그 이유는 '잠시 잠간 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사실이다.

`잠시 잠깐'은 사 26:20을 인용하여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환난과 위험의 기간이 짧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곧 재림하셔서 심판과 보상을 하실 것을 암시한다.

 

(26:20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않으시고 속히 오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고난과 위험 속에서도 인내해야만 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 '나의 의인''살리라''물러가면'의 주어로서 믿음으로 의롭게 된 그리스도인을 가리킨다. (Morris, Lane, Hewitt,Bruce).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3:11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라)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속히 오시리라는 사실을 믿고 직면한 고난과 박해에 대해 담대하게 맞서며 인내하면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삯과 약속을 허락하실 것이지만,

반대로 뒤로 물러나 인내하지 못하고 배교한다면 하나님에게서 버림을 받고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앞서 인용한 합 2:3, 4의 결론을 맺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신자들이 믿음을 가진 자임을 확인시킴으로 파멸에 이르지 않고 구원에 이를 것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만약 수신자들이 직면한 고난과 박해를 두려워하여 배교를 한다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오직 멸망의 심판뿐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림으로 박해와 위험을 잘 인내하고 담대하게 맞서서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구원에 이를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의 '믿음'을 언급함으로 다음 장에서 설명할 믿음을 예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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