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27일 목요일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의 선진들 4

 

성 경: [11:21-26]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 본문은 20절과 마찬가지로

족장 야곱이 미래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믿고 아들들에게

축복하였음을 나타낸다(Morris).

 

야곱은 자신의 임종이 가까왔을 때 손자인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축복하였다.

 

(48:13-20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17)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18)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19)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 때 요셉은 장자의 축복을 장자인 므낫세가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야곱은 팔을 어긋나게 하여 오른손으로 차자인 에브라임 머리에 얹고

왼손으로 장자인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 장자의 축복을 차자에게 해주었다.

 

(48:14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19-20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20)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이러한 사실은 장자에게 축복과 혜택을 부여하는 인간의 관습에 구애됨 없이

하나님은 그의 주관대로 뜻을 이루는 분이심을 시사한다.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 본문은 창 47:31(LXX)의 인용이다.

맛소라 본문(MT)에는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경배하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렇게 '지팡이''침상'이라는 두 가지로 번역이 되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mth)가 모음을 붙이기에 따라 '말테'(matteh, '지팡이')

읽을 수도 있고 '밑타'(mittah, '침상')로 읽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본문은 70인역이므로 전자를 택하고 있다.

 

야곱이 그의 임종이 가까왔을 때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다는 것은

지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9, 13)같이 살았던 그의 삶을

특징짓는 상징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9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왜냐하면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지팡이는 순례자의 상징적인 물건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Michel).

 

 

[11:22]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

 

본문은 창 50:24, 25의 내용에 대한 인용이다.

 

(50:24-25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탈출시켜

마침내 선조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실 것과

그 때 자신의 해골을 가지고 갈 것을 유언하였다.

 

(13:19 모세가 요셉의 유골을 가졌으니 이는 요셉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단단히 맹세하게 하여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너희를 찾아오시리니 너희는 내 유골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라 하였음이더라;

 

24:32 또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이러한 사실은 요셉의 믿음을 잘 예증해 주는 것으로 자신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내려온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이라고 확신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이르게 될 것을 예언하였다.

 

이는 요셉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하신다는

믿음을 소유하였음을 시사한다.

 

 

[11:23] 믿음으로 모세가 났을 때에 그 부모가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고 석 달 동안 숨겨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수가 급증함에 따라 위협을 느끼며

그들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사내아이가 출산되었을 때 그들을 전부

나일강에 던져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1:9-10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그런 상황에서 모세가 출생하였다.

 

(2:1-2 레위 가족 중 한 사람이 가서 레위 여자에게 장가 들어

2) 그 여자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석 달 동안 그를 숨겼으나)

 

저자는 70인역을 인용하여 본절에서 믿음으로 그 부모가 모세를

석달 동안 숨겼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출 2:2에는 모세를 숨긴 일을 한 사람으로서 오직 어머니만 언급되었다.

이러한 차이는 별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를 숨기는 일이 남편과의 합의 없이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Morris).

70인역에서 부모가 모세를 석달동안 숨긴 것은 '아름다운' 아이였기 때문이다.

 

아마 부모는 아이의 이러한 아름다움을 보고 하나님이 그 아이를 통해

큰 일을 이루실 것을 예견한 듯하다(Morris).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 '장성하여'는 출 2:11(LXX)'장성한 후에'

인용한 것이다. 이것은 그가 히브리인 어머니를 통해서 양육을 받았기 때문에,

 

(2:9 바로의 딸이 그에게 이르되 이 아기를 데려다가 나를 위하여 젖을 먹이라 내가 그 삯을 주리라 여인이 아기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더니)

 

모세가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identity)을 알았음과 동시에 그가 내린 결단은

장성한 사람이 내린 신중한 것이었음을 암시한다(Morris).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 본문은 저자가 출 2:11, 12의 내용을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다(Lane).

 

(2:11-12 모세가 장성한 후에 한번은 자기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들이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보더니 어떤 애굽 사람이 한 히브리 사람 곧 자기 형제를 치는 것을 본지라

12) 좌우를 살펴 사람이 없음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쳐죽여 모래 속에 감추니라)

 

모세는 자기 형제인 히브리 노예를 돕는다고 무력으로 개입하여 애굽 사람을 죽였다.

 

이것은 모세가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자처한 행위였으며,

바로의 공주의 아들됨을 부인하는 행위였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믿음으로 그 모든 것을 거절하였다.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

 

모세는 바로의 왕궁에서 왕자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권한을 향유하며

세상적인 온갖 쾌락을 다 즐길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원했다.

 

'하나님의 백성''이스라엘 백성'을 뜻하는 민족주의적 개념이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백성', 즉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의미하는 종교적 개념이

내포된 표현이며(Morris),

 

'죄악의 낙'은 모세가 바로의 왕궁에서 도덕적으로 타락한 생활을 하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깨닫고도 그대로 왕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 자체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크나큰 죄악이 되었을 것이라는 의미이다(Bruce).

 

한편 '더 좋아하고''보다 을 택하다'라는 의미로 모세가

그 일을 판단하여 선택하였음을 나타낸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왕궁에서 일시적인 안락함을 누리는 것보다

명령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일을 더 가치있게 여겼다.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

 

저자는 본문에서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가 신약 시대뿐만 아니라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있었다는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사 63:9에서 그리스도가 '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라고 기록하고 있으며(Bruce),

 

고전 10:4에서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라고 기록하고 있다.

 

결국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동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25)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 받는 것과 동일한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분으로서,

 

(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시대를 초월하여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백성과도 함께 하셨기에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凌辱)을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에 해당하는 헬라어 '미스다포도시안'10:35절에서의

''과 동일한 용어로서 '보상'을 뜻한다.

 

모세가 그리스도를 위해 능욕을 기꺼이 받은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상해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 상은 바로의 궁전에 있는 온갖 보화들보다도 더욱 고귀한 것으로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이었다.

 

저자는 본서의 수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고난당하는 사실을 알고

 

(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모세의 경우를 예로 들어(Bruce) 수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상을 바라보면서

기꺼이 고난에 동참하도록 권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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