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서의 올바른 처신 2
성 경: [잠 27:8-19]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13)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
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15)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19)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잠 27:8] 본향을 떠나 유리하는 사람은 보금자리를 떠나 떠도는 새와 같으니라
자기 집을 떠나 방황하는 자의 비참함을 묘사하고 있다.
특히 이 묘사는 공동체를 떠나지 말라는 경고로 볼 수도 있는데
당시 사회에서 공동체의 결속력은 매우 강한 것이어서
공동체에서 강제로 쫓겨나거나 스스로 떠나는 일은
생존 자체에 심각한 위협을 가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도망자나 방랑자가 되는 일은
가장 혹독한 징벌 중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창 4:12-13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그러나 가장 위험하고 절망적인 떠남은
하나님으로부터의 떠남이다.
[잠 27:9] 기름과 향이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나니 친구의 충성된 권고가 이와 같이 아름다우니라
▶ 친구의 충성된 권고 - '진실한 마음에서 되어진 권고가 주는 즐거움'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RV).
당시 향료, 장미, 아로마틱 나무 등을 이용하여 제조한 향은
귀한 손님이 방문하기 전 집안에 뿌려졌으며
이 향으로 인하여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손님은 기분 좋은 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W.J. Deane).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의 권고는
비록 그 내용이 견책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해도
듣는 자로 하여금 반발하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 준다.
[잠 27:10] 네 친구와 네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며 네 환난날에 형제의 집에 들어가지 말지어다 가까운 이웃이 먼 형제보다 나으니라
본 구절은 모순적인 것 같이 보인다.
관습이나 고대의 예의상 가족과 같이 생각되었던
아비의 친구를 버리지 말라고 말하면서
역경의 때에 형제의 집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하여 가지 말라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 구절의 핵심은
형제에게 도움을 청하지 말라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라는 데에 있다.
즉 이웃의 가까운 친구는 멀리 떨어져 사는 가족보다
더욱 긴밀히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친구와 좋은 관계를 유지토록 하라는 권고로 보면 될 것이다.
[잠 27:11] 내 아들아 지혜를 얻고 내 마음을 기쁘게 하라 그리하면 나를 비방하는 자에게 내가 대답할 수 있겠노라
▶ 비방하는 - 이것은 부모나 교사가 거짓 교사,
혹은 무책임한 부모라는 혹평을 받는 것을 암시한다.
당시 교사나 부모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나 자식의 결점과 약점에 대한 책임을 지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설사 타인의 무고한 비난이 있다 할지라도
자식이나 제자가 그 가르친 바대로 살 때에는
그 부모나 교사가 기쁨을 느낄 것이다.
바울은 회심 이후 조롱과 비난과 핍박 속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가 전한 복음을 받은 자들이 듣고 바로 깨달아
자신처럼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살 때
바울의 마음속에 기쁨이 충만하였다.
(살전 2:17-20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
18)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9)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20)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잠 27:12]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 - 우매한 자는
지혜를 가까이 함으로써 악을 분별하고
거기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권고라 하겠다.
[잠 27:13]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의 보증이 된 자는 그 몸을 볼모잡힐지니라
▶ 타인을 위하여 보증이 된 자의 옷을 취하라 – 이것은 나그네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보증인으로 나섰을 경우
최대한 주의하라는 권고로 보여진다.
당시는 저당잡은 것이라 할지라도
옷의 경우는 해가 지기 전까지 본인에게 돌려줘야 했다.
(출 22:26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그네나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그 옷을 맡아두라고 하는 것은
그가 약속을 이행치 않고 도망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잠 27:14]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그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 같이 여기게 되리라
본 구절은 표면적으로 이른 아침에 큰 목소리로 축복하거나
혹은 인사함으로써 그 듣는 자로 하여금 오히려 성가시게 하고
불쾌하게 만드는 멍청한 사람에 대한 묘사인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아침에 큰소리로 하는 축복의 말
혹은 인사를 겉으로는 요란하지만
진심은 결여된 가식적인 아첨으로 해석하고 있다. (W.J.Deane, Clark, Cook).
참 지혜자는 가식적인 아첨의 축복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잠 27:15] 다투는 부녀는 비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라
▶ 비 오는 날에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 - 이것은 여러 군데 구멍이 뚫려 있어서
비오는 날이면 계속해서 비가 새는 지붕을 연상케 한다.
이 같은 오두막에 사는 사람의 경우
일단 비가 내리면 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결국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아내와 사는 자의 처지도 이와 같다 하겠다.
남편이 집에 들어오기를 싫어하고 밖으로 겉돌게 되면
결국 가정의 평화는 바랄 수 없다.
70인역(LXX)의 본 구절 직역은 이와 같다.
'빗방울들은 썰렁한 날 사람을 그의 집 밖으로 몰아낸다.
마찬가지로 욕을 퍼붓는 여인은 그의 남편을 그의 집 밖으로 몰아낸다.'
[잠 27:16] 그를 제어하기가 바람을 제어하는 것 같고 오른손으로 기름을 움키는 것 같으니라
본 구절의 원문 직역은 이렇다.
'누구든지 그녀를 숨기는 것은 바람 혹은 그의 오른손의 기름을 숨기는 것이다.‘
15절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난해해지는 구절이다.
의미하는 바는 입심은 아내의 혀를 억제하거나
그 소리를 숨기기란 실로 어렵다는 것이다.
바람을 억제할 수 없듯이
말싸움하기 좋아하는 아내의 기질을 억제할 수 없다.
그리고 손에 묻은 기름의 냄새를 숨길 수 없듯이
아내의 목소리가 집 담을 타고 밖으로 나가는 것을 숨길 수가 없다.
[잠 27:17]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사람이 그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 - 본 구절의 해석은
분명하지 않지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압축된다.
그 하나는 부정적인 해석으로
한 사람의 감정적인 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 역시 나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취하는 경우 얼굴이 빛난다는 것은 얼굴이 상기됨을 가리킨다.
또 다른 하나는 긍정적인 해석으로
두 친구 사이의 건설적인 토론이나 인격적인 친교는
인격의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이 경우 '얼굴'은 양쪽의 인격 혹은 지적 능력 등을 나타낸다.
말하자면 두 칼이 부딪히듯이 두 사람의 인격과 지혜가
진지한 사귐과 토론이라는 장(場)을 통해 더 발전된다는 것이다.
아마도 전자는
언어 사용의 부정적 측면을 주시하는 15, 16절의 연장선에서 이루어진 해석 같고,
후자는 본 구절 상반절의
철과 철이 서로 부딪히는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을 근거로 한 해석인 것 같다.
이 두 해석 중 어느 한 해석을 지지하기란 쉽지 않지만
본 구절을 종교 교육적인 차원의 문제로 이해할 경우
후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참고로 탈무드는 종교 교육을 위한
효과적인 방식 중의 하나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본 구절과 유사한 인용을 하고 있다.
'두 생도는 토라 연구 중에 서로를 예리하게 만든다.'
[잠 27:18] 무화과나무를 지키는 자는 그 과실을 먹고 자기 주인을 시종하는 자는 영화를 얻느니라 -
무화과나무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잘 자라난다.
그러나 일단 수확 때가 되면 이 나무는 풍성한 소출을 낸다.
본 구절의 핵심적 교훈은 부지런 하라는 것인데,
하반절은 사람을 섬기는 일에서도 동일한 부지런을 나타내야 한다고 가르친다.
특히 '시종하는'은
극히 세밀하고 자상한 섬김을 가리키는데
이 같은 섬김의 노력을 한 종의 경우
인정을 받지 못한다거나 보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염려를 할 필요가 없다.
보상을 바라기 이전에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참 봉사의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교훈은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우리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섬김을 나타내야할 영역은
말씀 깨달음, 복음 전파, 성도 사랑 등 허다하다.
이처럼 봉사와 섬김을 마친 후
우리는 조바심을 내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수고한 자에게 대가가 지불된다고 약속하셨으며,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결코 우리의 수고를 간과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히 6:10 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잠27:19]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 - '한 사람의 마음은 한 사람에 대하여 그러하다'가 원문 직역이다.
여기 두 번 언급되고 있는 이 '한 사람'을
동일 인물로 보느냐 서로 다른 인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동일 인물로 볼 경우에는,
(맑은 물이 얼굴을 비추듯이) '인간의 마음이 그 사람의 진정한 성품을 나타낸다'(NIV)
혹은
'우리가 진정한 자기 인식에 도달하려면
우리의 마음 자세를 들여다 보아야한다'(A.P.Ross)는 의미로 해석된다.
반면에 서로 다른 인물로 볼 경우는
인간이 자신의 성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다른 사람을 관찰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Toy).
두 해석 중 어느 쪽을 택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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