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5일 수요일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심령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성 경: [21:1-12]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

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 하리라

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21:1]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본 구절을 원문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왕의 마음은 여호와의 손 안에 있다.

그는 수로처럼 자기가 원하는 대로 그것을 조정한다.‘

 

한마디로 왕의 결정은, 하나님의 통제하에 있다는 말이다.

본 구절은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평행법을 사용하고 있다.

 

상반절은 왕의 결정이 여호와의 통제 아래 있음을 진술하고

하반절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왕을 조정하시는 사실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사실은 '마음'이 수로(水路)에 비유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비유가 강조하는 바는 농부가 원하는 대로 수로를 통하여

밭에 물을 넣듯이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왕을 다루신다는 것이다.

 

한편 왕이 하나님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는 진술은

본 잠언 전반에 깔려있는 사상과 조화를 이룬다.

 

(16:10 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 입이 그릇하지 아니하리라).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 이것은 마음의 동기를 평가한다는 뜻이다.

 

인간은 외부로 드러나는 행위 따위를 보고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하나님은 그 행위의 동기를 평가하신다는 것이 초점이다.

 

70인역은 본 구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의인인 것 같으나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21:3] 의와 공평을 행하는 것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여기시느니라

 

의와 공평 - 각각 이 두 단어는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특별히 두 단어가 나란히 나오는 경우는

18:19;삼하 8:15;37:23;56:1 등이며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삼하 8: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새;

 

37:23 전능자를 우리가 측량할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심판이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 하심이라;

 

56:1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공평을 지키며 의를 행하라 나의 구원이 가까이 왔고 나의 의가 쉬 나타날 것임이라 하셨은즉)

 

여기서는 실제 생활 가운데 율법을 준수하는 것

혹은 하나님 사랑에서 나온 정직한 삶이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무난하겠다.

 

이것을 하나님은 제사보다 더 기꺼이 받으신다고 본 구절은 확증하고 있다.

물론 본 구절이 예배의 의식(儀式)을 버리라고 가르치는 것을 아니다.

다만 정직한 삶이 없는 종교 행위는 무가치함을 강조할 뿐이다.

 

(15: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 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삼상 15:22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40:6-8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7)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1:11-17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12)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13)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14)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15)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16)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17)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21:4] 눈이 높은 것과 마음이 교만한 것과 악인의 형통한 것은 다 죄니라

 

죄인의 번영함은 그 출처가 악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덕과 경건에 기초하지 않으므로 죄가 된다고

유추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본 구절은 악인의 교만이나 자랑뿐 아니라

그의 번영까지도 죄라고 못 박고 있다.

 

 

[21: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경영 - 문자적인 뜻은 '생각', '사상'이지만

일반적으로 '계획'으로 번역되고 있는데 본 구절에서도 이것이 적절하다.

인내가 곁들인 '계획성'은 번영으로 인도한다.

 

조급한 - 아마도 이와 같은 모습은 수단을 가리지 않고

빨리 부자가 되려는 자에게서 볼 수 있을 것이다.

 

(20:21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28:20 충성된 자는 복이 많아도 속히 부하고자 하는 자는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본 구절은 반의적 평행법을 사용하여

인내와 계획성이 가미된 부지런함을 권면하고 있다.

 

 

[21: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 - 불의한 방법으로

취한 재물은 언제 다시 잃게 될지 모르며

현재 그 재물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공의로운 법에 의해

언제 처벌받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인내와 계획성을 가지고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

조급하게 부자가 되려는 사람이 맞게 될

 

(5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

 

운명에 관한 지적이자 그들을 향한 경고이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딤전6:9).

 

 

[21:7] 악인의 강포는 자기를 소멸하나니 이는 공의 행하기를 싫어함이니라

 

소멸하나니 본 구절은 옳은 일을 행하기보다는

악을 지속적으로 행하기를 선택했던,

그래서 모든 비난의 책임이 그들 자신에 있는 자들에게 관해 말하고 있다.

 

 

[21:8] 죄를 크게 범한 자의 길은 심히 구부러지고 깨끗한 자의 길은 곧으니라

 

[21:9]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

 

움막 - 문자적인 뜻은 '동무의 방'인데 대부분의 역본들은

'지붕 꼭대기의 한 구석'(a corner of the housetop, KJV)으로 번역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평평한 지붕 한 귀퉁이에 손님을 위한 침실을

자그마하게 짓는 것이 보통인데 아마도 이것을 염두에 둔 표현인 것 같다.

 

(왕상 17:19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왕하 4:10 우리가 저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짓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진설하사이다 저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 유하리이다 하였더라).

 

 

[21:10] 악인의 마음은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그 이웃도 그 앞에서 은혜를 입지 못하느니라

 

남의 재앙을 원하나니 - 본 구절은 인간 부패의 중요한 속성

한 가지를 가르쳐 준다. 즉 인간은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는커녕

해롭게 할 목적으로 애쓰되 열망할 정도로 애쓴다는 것이다.

 

이웃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악을 애써 도모하는 자는

예외없이 자신만을 생각하는 철저한 이기주의자들이다.

 

 

[21:11] 거만한 자가 벌을 받으면 어리석은 자는 경성하겠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 하리라

 

본 구절은 '어리석은 자''지혜로운 자'를 비교하고 있는데

 

'어리석은 자'란 너무 단순하여 잘 깨닫지 못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사람은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되지 않아서

훈계를 받아들여 소화하지를 못하며,

다만 악인에게 징벌이 임하는 것을 목격하고서야 이를 경고로 받아들인다.

 

반면에 지혜로운 자'가르침'을 통하여 지식을 얻는데(C.H. Toy)

'가르침'이란 그로 하여금 삶의 구체적인 영역들을

대처할 수 있게 하는 지혜 혹은 통찰력을 뜻한다.

 

지혜로운 자는 결코 배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반대로 어리석은 자는 말로는 가르칠 수 없는 존재이다.

 

본 구절의 초점은 어리석은 자에 있지 않고 지혜로운 자에 있다.

진정 지혜로운 자는 성숙한 자인데

성숙한 자란 얼마나 쉽게 훈계나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느냐를 보고 결정할 수 있다.

 

 

[21:12] 의로우신 자는 악인의 집을 감찰하시고 악인을 환난에 던지시느니라.

 

의로우신 자 - 어떤 학자는 이것을 하나님이 아닌 인간으로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 재판관 혹은 통치자로 본다(Greenstone).

 

그는 이 견해의 근거로서, 본 잠언이

하나님에 관하여 악인을 감찰하거나 환난에 몰아넣는 분으로

직접 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제시한다.

 

또 다른 견해는 이를 하나님으로 본다.

그 근거는 본 용어의 품사가 형용사인데

이 형용사 형태로 하나님에 관하여 언급하되

본 구절이 묘사하고 있는 내용을 거의 그대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이

잠언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는 것이다.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 아니하였음이니라;

 

34:17 공의를 미워하는 자시면 어찌 치리하시겠느냐 의롭고 전능하신 자를 네가 정죄하겠느냐;

 

40: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셀라) 그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우리는 후자의 견해가 옳다고 본다.

쉽게는 인간인 의인이 악인을 감찰,

징벌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는 성경을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며

문맥을 봐도 주체는 하나님이시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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