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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잠 22:1-8]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잠 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 명예 - 이 명예, 명성이 부(富)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본 구절은 말한다.
그러나 이 말이 부를 무시하는 말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명예가 부보다 낫다는 뜻이며
부에만 집착함으로 초래될 수 있는 폐단을 경계하는 의미이다.
▶ 은총 - 원어는 '헨'으로서 다른 사람에서 받는 사랑을 말한다.
진정한 기쁨은 재력이나 권력이 아니라
서로 주고 받는 사랑에서 찾을 수 있다(Kidner).
[잠 22:2]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본 구절을 원문 직역하면 이와 같다.
'부자와 가난한 자는 함께 만난다. 여호와는 그들 모두를 지으신 분이시다’
(The rich and poor meet together: the Lord is the maker of them all, KJV).
그런데 여기서 '함께 만난다'는 말의 의미가 애매하므로
본 구절 해석이 다소 어려움에 봉착한다.
본 구절과 같은 혼합적 평행구인 경우
그 핵심이 하반절에 있는 것이 히브리 시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본 구절의 의미는 보다 분명해진다.
즉 사회적 신분에 관계없이 인간은 평등한데
그 까닭은 모두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빈부 격차의 문제는 인류 역사만큼이나 그 유례가 깊다.
성경에는 가난한 자의 게으름을 나무라는 부분도 있지만
(10:15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패망이니라),
부자에 대한 경고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마 19: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잠 22:3] 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들은 나아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 보면 - 미래에 있을 위험이나 함정 혹은 유혹 따위를
미리 내다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마디로 슬기로운 자는 사려 깊다.
사려 깊음은 지혜와 연단을 통하여 훈련받은 결과적 산물인데
사실 본서의 주요 목적 가운데 하나도
슬기로운 자에게 이 사려 깊음을 심는 것이다.
(1:4 어리석은 자로 슬기롭게 하며 젊은 자에게 지식과 근신함을 주기 위한 것이니).
▶ 어리석은 자들 -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는 슬기로운 자와는 달리 앞을 예견하지 못하고
사려 깊지도 못한 자들은 어느 시대에나 많음을 시사한다.
이들은 실수를 범하며 해를 만나고 위험을 자초하여 생명을 잃기까지 한다.
[잠 22:4]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본 구절은 두 개의 영적 조건, 곧 겸손과 경외에 이어
세 가지의 상급, 곧 부, 영예, 생명을 나열하고 있는데,
이 두 문구의 관계성은 '보응'이라고 번역된 '에케브'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용어는 '결과'로도 번역될 수 있다.
그런데 상반절이 말하는 겸손과 경외는 영적인 의미상
동격으로 볼 수 있는 속성들이다.
따라서 상반절을 '겸손, 곧 여호와 경외의 결과는'으로 번역해도 무리는 없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
자신의 부족을 인정하는 것,
의지적 복종, 죄의 확신, 이에 따르는 결과들,
이 모든 것을 여호와 경외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잠 22:5] 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 패역한 자 - 원어는 '에케쉬'로서 '완고한 자'가 그 문자적인 뜻이다.
'완고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또한 가시와 올무는 고통과 고난 그리고 돌연스런 위험과 역경을 각각 뜻한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사는 자의 여정은
때로는 순탄한 듯이 보이기도 하나 결국에는
파멸로 몰고 가는 각양의 함정들이 숨겨져 있다.
[잠 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 본 구절의 핵심을 찾기 위해
먼저 살펴볼 단어는 '가르치라'로 번역된 '하노크'인데
이것은 그 문자적인 뜻이 '훈련시키다'이지만
'일생을 바치다'의 의미 역시 포함된 단어임을 고려할 때
'그 일생을 바치기 위하여 훈련하라'는 의미로 이해하면 되겠다.
일차적으로 찾아낸 본 구절의 핵심은
아이를 훈련하는 목적인데 그 목적은
하나님께 그 아이의 일생을 바치는 일이다.
시작 나이는 16-24세로 보는 탈무드의 견해와는 달리
훨씬 이른 2-3세로 보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아이'(나아르)는 일반적으로 '젖먹이'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편 현대 심리학자들의 견해에 따르면,
3-7세의 시기가 한 개인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형성되는 때라고 한다.
앞서 찾은 핵심 외에 또 다른 핵심을 찾기 위하여 살펴볼 단어는
'길'인데 '마땅히 행할 길을'의 문자적 번역은 '그의(그 아이의) 길을 따라'이다.
이 '길'에 관한 최근의 해석 경향이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미 천 여년 전에 동일하게 해석한 학자가 있기 때문이다(Saadia).
교육에 있어 피교육자의 자질이나 성격들을 고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지지할 만하다.
물론 피교육자의 입장을 고려한다는 것이
그의 이기적 자아의 소욕을 배려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본 구절의 요점은
아이의 능력, 잠재력, 본성, 기질 따위를 잘 고려하되
그 아이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어려서부터 훈련시키라는 것이다.
[잠 22:7]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본 구절은 우선 동시대적인 교훈을 준다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땅이 존재하는 한 그 위에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열심히 일해서 가난을 면하라는 것이다.
가난이 죄는 아니지만
자칫 비굴해질 수 있고 그 마음을 위축시킨다.
더구나 믿지 않는 자에게 본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차원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는 가운데
현실적 어려움을 당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열심히 일해도
가난할 수 있다는 사실도 예외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잠 22:8]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 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 본 구절은 악을 심는 자는
아무것도 거두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성경 유사 부분, 곧 심은 대로 거둔다는 말씀들을 고려할 때
개역 성격의 번역은 적절하다.
(욥 4:8 내가 보건대 악을 밭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
호 8:7 저희가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심은 것이 줄기가 없으며 이삭은 열매를 맺히지 못할 것이요 설혹 맺힐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
10:13 너희는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갈 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 문자적인 뜻은
'분노의 막대기가 넘어지리라.' 무죄한 자를 해치려고 했던 강포가
헛되이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하반절의 사상을 고려할 때 본 구절은 아마도
억압 당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주 목적인 것 같다.(Kin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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